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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차려 먹는 데 진심인 사람이 따라서 진심이 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테이블웨어 장만이다. 요리하는 건 좋아하면서 그릇 및 커트러리, 컵 등에 관심 없는 사람을 나는 지금껏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공들여 맛있게 만든 음식을 예쁜 그릇에 담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니까.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예쁜 걸 좋아하고 요리하는 것에도 진심이었던 그가 테이블웨어에 관심이 많았던 건 지금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외출할 일이 있을 때마다 예쁜 컵이나 괜찮은 그릇 같은 게 있는지 근처의 리빙 코너를 기웃거렸고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일부러 스케줄을 잡아 여주 쪽에 있는 그릇 도매 매장에 다녀왔다. 인심이 좋은 단골 매장 주인아주머니는 여기까지 온 차비 정도는 빼드려야 한다면서 면기나 밥그릇 값만 받고 종지나 컵 찬기 등의 작은 그릇 등은 공짜로 주시곤 했고, 그렇게 한 세트씩 그릇을 사들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우리는 오늘 산 그릇은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고 어떤 음식을 담아 어떻게 놓으면 예쁘겠고 하는 것들을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쉬지 않고 떠들곤 했다.
그렇게 사온 그릇이며 컵들은, 당연하지만 두 개씩이었다. 더러는 일부러 짝이 맞지 않는 것으로, 각자 다른 것으로 한 개씩 산 것들도 없진 않았지만 그런 그릇들조차 같이 쓰는 '제 짝'이 있었다. 그렇게 하나 둘 사모은 그릇들은 그다지 크지 않은 집의 정리장을 한가득 채우고, 이제 뭔가를 새로 들여놓기 위해서는 뭔가를 버려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래서 우리는 그릇을 사 온 날이면 나는 그릇에 붙어 있는 스터커들을 자국 안 남게 잘 뗀 후에 씻느라고, 그는 있는 그릇들을 비집고 오늘 산 것들을 쑤셔 넣을 궁리를 하느라고 바빴다. 그리고 나는 요즘 그런 그릇들을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차린 밥상만큼 많은 그릇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일 것이다. 요즘 내 밥은 보통 면기 한 개, 혹은 면기 하나에 밥그릇 하나 정도면 충분하다. 숟가락도, 젓가락도, 쓰는 것 한 두 개만 돌려가며 쓰고 있다. 그가 온갖 궁리를 다해 가며 장만해 놓은 그 많은 그릇들과 수저들, 컵들은 요즘 정리장 안에서 개점휴업 중이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떠나던 그날 아침 그대로, 아직도 싱크대 위에 남겨져 있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제일 최근에 산, 그래서 제일 꺼내기 쉬운 곳에 들어가 있고 그와 함께 쓴 기억이 그리 많지는 않은 그릇 몇 개만 깔짝깔짝 꺼내 쓰고 있었다.
그렇게 산지 근 두 달째. 며칠 전부터 나는 조금 용기를 내서, 다른 그릇들을 하나씩 꺼내보고 있다. 라면과 덮밥과 리조또를 같은 그릇에 담는 나를 그가 본다면 분명히 잔소리를 할 것이다. 너 그렇게 청승맞게 살라고 내가 그렇게 골질해가며 그 그릇들 하나하나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같이 그릇에 대해 토론할 사람이 없어진 지금 내가 내 돈을 들여 새 그릇들을 사지는 못하겠지. 그러나 그동안 잘 쓰던 것들이라도 하나씩 꺼내서 조금씩이라도 사용하는 것이 혼자 남겨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오늘 점심때는 언젠가 같이 먹으려고 주문해서 냉동실에 넣어놓았다가 그가 발인하던 날 집에 돌아와 허겁지겁 먹었던 설렁탕 남은 한 팩을 데워서 먹을 예정이다. 그 설렁탕은 내가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그가 떠난 후 한 번도 꺼내서 쓰지 않은 덩굴무늬가 있는 면기를 꺼내서 거기다 담아서 먹어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고작 그런 것들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