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아직, 있다

-62

by 문득

사람은 참 무심하기도 하고 무던하기도 하다. 고작 60여 일 만에 내 일상은 그래도 반 정도는 회복된 것 같다. 회복되지 않은 나머지 절반 중에는 그가 사라짐으로 인해 영영 회복 불가능하게 되어버린 것들이 대부분이니, 나 혼자서 지탱할 수 있는 나의 일상은 이제 웬만큼 회복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그 사실은 일견 다행스럽기도 하고 일견 씁쓸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견딜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재채기처럼 혼자 남은 내 인생이 너무나 막막하고 두려워서 손발이 차디차게 식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 내 곁에 30년 가까이 존재했던 사람 하나가 어느 날 갑자기 없어져 버린 이 현실이 마치 한숨 자고 나면 깰 악몽처럼, 아주 질 나쁜 몰래카메라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온다. 더욱 나쁜 것은 지금 내 곁에는 그렇게 삽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나를 붙들어줄 만한 존재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 추락감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바닥을 친 감정이 한참 동안의 진폭 운동을 하다가 알아서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며칠 전 오후쯤에, 한 번 그런 순간이 왔었다.


이런 순간이 오면 물에 빠진 사람이 그러하듯 뭐라도 붙들고 싶은 심정이 된다. 이 타래의 가장 첫 글에 썼던, 새벽 3시에 누구에게든 무슨 말이든 털어놓고 싶어서 죽을 것 같은 그런 상태 말이다. 그래서 전화로 보는 신점을 봤다. 신점이라는 게 뭔지, 과연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얼굴도 안 보고 전화로 하는 대화에 신이 내려본들 얼마나 내릴 것인지, 그런 것들을 일일이 생각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냥 누구에게든 무슨 말이든 듣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의 초상화가 있는 데서는 차마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어서 방 밖으로 나와 문까지 닫고 통화를 했다.


나와 인연이 된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침착하게 다 듣더니 대번 그렇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일 당하고 어렵게, 힘들게 보내 주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안됐지만 아직 안 가셨어요. 옆에 있어. 왜 안 갔느냐면, 뭐 절차가 모자라고, 정성이 부족하고, 남은 한이 있고, 그런 게 아니야. 자손님이 눈에 밟혀서 못 가고 있어요. 혼자 놔둔 게 미안해서. 걱정돼서. 너무 힘들어하니까 발이 안 떨어져서 못 가고 있다고.


거기서부터 나는 울기 시작했다. 뭔가 많은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이 기억나지 않는다. 몇몇 부분은 터져 나오는 울음 때문에 숫제 핸드폰을 내려놔 버려서 이야기를 채 다 듣지 못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아주 담담하게 삶과 죽음이 아주 멀리 있는 것 같아도 백지 한 장 차이인 것과 아마도 그날 그는 운이 아주 나빴을 뿐이었을 것이며 사람은 고작 하루의 운이 안 좋은 걸로도 순식간에 저승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말했다.


그분이 바라는 건 딱 한 가지예요. 자손님이 열심히 행복하게 사는 거야. 왜냐하면, 그분은 한 세상을 살면서 이 세상에 남겨놓은 게 자손님 하나뿐이거든. 내가 만들어놓은 것 중에 제일 빛나고 아름답고 소중한 게 자손님이거든. 그런 사람이 그렇게 슬퍼하고 있는데 어떻게 떠나요. 못 가지. 내가 보니까 당분간은 이 분이 떠날 마음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제 영영 헤어졌다 다시는 못 본다 이런 생각 하지 말고, 행여 나쁜 마음먹지 말고 씩씩하게 살아요. 그게 자손님이 할 일이에요. 그렇게 30분의 상담 시간은 끝나고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그 선생님의 얘기들이 정말인지, 아니면 내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줬을 뿐인지 그런 것까지는 잘 모르겠고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내가 아는 그라면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어느 날 갑자기 떠나게 되어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으리라는 것. 그날 그런 식으로 떠나지 않을 방법이 백만 가지 중에 한 가지만 있었더라도 그는 그렇게 했을 것이며, 그러니 그가 그날 그런 식으로 떠난 것은 그로서도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내가 잘 지내기를 가장 간절하게 바랄 거라는 것.


그래도 한 번은 물어보고 싶다. 두 달째 꿈에조차 한 번 오지 않는 사람에게. 그렇게 눈에 밟혀 어쩔 줄을 몰라할 거면서, 왜 그렇게 갑자기 떠난 거냐고. 한 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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