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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피우고 싶다 혹은 한 번 피워볼까 하는 생각조차도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건강에 좋지 않아서, 꽁초가 나오고 그걸 일일이 버리는 게 귀찮아서, 그 특유의 연기와 냄새가 싫어서 등등의 이유는 아니고 그냥 별로 흥미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담배에 무관심하지 않았더라면 집을 떠나 타지 생활을 하기 시작한 후 한 번은 입에 대 보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는 요즘처럼 외롭고 울적한 시기에도 담배나 배워서 좀 피워볼까 하는 생각은 들지 않으니 정말 나와는 인연이 없는 물건인 게 맞는 모양이다.
반면에 그는 꽤 오랫동안 담배를 피웠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는 이미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우리가 함께한 시간 내내 그랬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첫 담배는 '디스'였다. 물론 내가 기억하는 것이 그렇다는 말이지 나를 만나기 한참 전부터도 이미 흡연자였던 그의 첫 담배는 다른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의 곁에서 처음에 천 원이던 담뱃값이 천오백 원으로, 이천 원으로, 이천오백 원으로, 급기야 사천오백 원까지 오르는 것을 쭉 지켜봤다. 담뱃값이 오를 때마다 그는 '담배 팔아서 세수 채우는 주제에 담배 사 피우는 사람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이상한 나라'에 대해 분개했고 나는 열심히 맞장구를 쳤다.
나는 그에게 담배 좀 줄이라거나 끊으라거나 하는 잔소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한 이후로는 더 그랬다. 나는 그런 걸로 그에게 눈치를 주고 싶지 않았고 우리 집에서라도 마음 편하게 한 대 피울 수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물론 그건 우리 집에 아이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관용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가 담배를 가지고 나를 귀찮게 하거나 집을 어지럽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재떨이를 늘 자신이 비우고 관리했으며 아무 데나 침을 뱉거나 아무 데나 재를 날리고 다닌다거나 하는 지저분한 짓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담배를 그의 몇 안 되는 취미 혹은 기호식품 중 하나로, 그냥 그렇게 눈감아 주었다.
그렇게 얼추 30년 가까이 담배를 피우던 그는 작년 여름쯤 슬그머니 담배를 끊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금연에는 그 어떤 거창한 퍼포먼스도 없었다. 요즘 담배를 좀 줄였나 봐? 하고 묻는 나에게 아니 일주일쯤 아예 안 피우고 있는데 하고 대답한 것이 전부였다. 생각보다 할만하다고 했다. 딱히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 몸이 배배 꼬인다든가 입이 마른다든가 하는 소위 담배 말리는 증상은 별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원래부터도 입이 심심할 때 사탕 하나 먹는 정도의 기분으로 한 대씩 피웠던 것뿐이었고, 그래서 한 번 끊겠다고 마음먹으니 별다른 금단현상 같은 것도 없이 무난하게 피우지 않게 되었다고. 잘했네. 나는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오빠도 이젠 이팔청춘 아니니까 몸에 안 좋다는 거 안 하면 좋지. 지금 생각하니 그때부터 그는 이미 몸이 심각하게 안 좋아지고 있었던 걸 느꼈던 것 같다.
그의 금연은 다분히 즉흥적이고 갑작스러웠으므로 그의 책상에는 그가 피우던 담배가 거의 한 갑 가까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제 안 피울 거니까 그냥 버려야 되는데 한 갑에 사천오백 원이나 주고 산 것을 한두 개피 피우고 버리려니 아까워서 못 버리겠다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남자들이 이래서 담배 못 끊는 것도 있어. 담배가 비싸니까 이것까지만 피우고 끊어야지 하다가 못 끊게 되는 그런 거. 당근마켓 같은데 한 개피씩이라도 올려서 팔까. 그런 이야기를 하며 웃던 기억도 있다.
가끔 그를 만나러 봉안당에 갔다가 다른 분들의 봉안당에는 어떤 물건들이 안치돼 있는지를 슬쩍 볼 때가 있다. 많은 남자분들의 봉안당에 담배가 안치돼 있다. 그래서 나도 그에게는 거의 일생의 친구라 할 수 있는 담배를 한 갑 정도 넣어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결국 그러지 못했다. 이왕 큰맘 먹고 끊은 담배니까. 거기서라고 해도 담배가 몸에 좋을 리는 별로 없으니까.
내가 조금 더 극성스러운 사람이었다면. 좀 더 일찍 잔소리해 담배를 끊게 했더라면 그는 그날 그런 식으로 내 곁을 훌쩍 떠나지 않았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다. 그 대답은 온전히 그만이 알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