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다시는 안 사려고 했는데

-64

by 문득

나는 감자를 좋아한다. 적어도 꽤나 오랫동안 그렇게 알고 살았다. 그러나 나를 30년 가까이 지켜보고 그중 몇 년은 손수 밥을 해서 먹여본 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너는 감자튀김이나 감자볶음이나 감자 샐러드 같은 특정한 몇몇 음식을 좋아하는 거지 감자라는 식재료 자체를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또 조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어쨌든 감자는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는 식재료이고 타이밍이 좋지 않아 비싸질 때는 정말 어처구니없을 만큼 비싸지기도 했으므로 우리는 가끔 소셜 커머스 같은 곳에서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감자를 팔면 어지간하면 한 박스씩 사 두는 편이었다. 몇 년 전 강원도에서 창고에 재여 있던 감자를 오천 원에 10킬로그램씩 팔았던 그런 일처럼 말이다. 그런 건수를 주워다가 이런 거 있는데 하나 사볼까? 하고 묻는 것은 내가 하는 몇 안 되는 일 중의 하나였고 그는 자신이 짜 놓은 식단을 보고 마침 필요한 경우에는 사라고 '결재'를 내줬다. 예의 그 감자 역시도 그런 식으로 한 박스를 사서 별의별 것을 다 해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가 떠나기 며칠 전에도 우리는 감자를 한 박스 샀었다. 막상 감자를 받고 보니 알아 너무 잘아서 이걸로 뭘 해 먹으려면 감자 깎는 데만 한세월 걸리겠다며 나는 투덜거렸고 그는 그 돈에 이만큼 사면서 알이 굵기까지를 바라면 도둑놈 심보라며 그는 웃었었다. 그는 골판지로 된 종이상자에 구멍을 몇 군데 내고 바닥에 신문지를 깐 후에, 감자를 신문지로 한 알 한 알 싸서 보관하곤 했다. 그래서 그 감자가 오던 날은 그도 나도 하던 일들을 잠시 접어두고 5킬로그램이나 되는 감자―그나마 잘아서 개수가 아주 많았다―를 하나하나 신문지로 감싸서 박스 안에 넣는 일을 했었다. 그리고 그 감자로 뭔가를 한 번 해 먹어보지도 못하고 그는 며칠 후 먼 곳으로 떠났다.


5킬로그램이나 남아있던 감자는 내 골칫거리 중의 하나였다. 넋이 나가 반쯤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보낸 며칠을 지나고 더듬어 보니 감자에서는 이미 싹이 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젠 정말로 시간이 별로 없었다. 나는 그야말로 먹어치운다는 기분으로 그 싹이 나서 물러지기 시작한 감자들을 꾸역꾸역 먹어 없앴다. 마지막 몇 개는 도저히 답이 없어서 그냥 버렸다. 조직이 마치 스펀지같이 변한 마지막 감자들을 버리면서, 나는 앞으로 다시는 감자를 박스채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며칠 전 나는 또 5킬로그램짜리 한 박스에 8천 원이 채 안 되는 햇감자 광고를 보고 홀린 듯이 그 감자를 사고 말았다.


택배로 온 감자는 지난번 그 감자들보다는 그래도 알이 조금 굵었다. 나는 그가 만들어놓은 감자 상자에, 그가 했듯 감자를 한 알 한 알 신문지로 싸서 차곡차곡 담았다. 이건 또 뭘 해서 어떻게 다 먹나. 그런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대. 나 언제 철들지. 누구더러 다 먹으라고 이런 걸 샀을까. 나 진짜 답 없다. 이런 말들을 중얼거리면서.


앞으로도 내 삶은 다시는 하지 않겠다던 실수를 또 하고, 또 후회하고, 또 잊어버리고의 끝없는 반복일지도 모르겠다. 너 그거 그렇게 안 하기로 했잖아, 하고 옆에서 말해주는 사람이 이젠 없어져 버려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