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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다 읽었다. 2주 정도가 걸린 것 같다. 나는 원래 책을 한 번 들고 앉으면 다 읽어버리고야 다른 일을 하는 성격이어서 책 하나를 붙들고 2주에 걸쳐 찔끔찔끔 읽어본 기억이 없다. 책의 볼륨과 다루는 내용이 워낙 만만치 않기도 했고 지금의 내 상태가 책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을 만큼의 심적인 체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코스모스'를 완독한 다음 목표는 언젠가 브런치에도 썼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그래도 코스모스보다는 좀 빨리 읽지 않을까. 서점에 가서 책을 사 오는 길에 그런 생각을 했다. 워낙에 좋아하는 필자이기도 하고, 다루는 내용 자체가 코스모스보다는 좀 나에게 가까이 있는 내용들이니까.
그러나 그건 그냥 내 생각이었다.
당장 해야 할 무슨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사 온 책을 닷새 넘게 책상에 놓아두고 첫 장을 펼치지 못했다. 서점에 가서 사 오든, 도서관에 가서 빌려오든, 나는 내 손에 들어온 책을 이렇게까지 시작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둔 적이 없었다. 아니, 사실 시작은 했다. 그러나 펼쳐본 첫 장에서 기선을 제압당하고 말았다. 마치, '코스모스'를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서문의 그 10년간 열지 못한 서류 가방 이야기에 한바탕 눈물부터 쏟았던 것처럼.
나는 이 페이지를 보고 책을 덮었다. 읽을 마음이 싹 사라지고 말았다. 아니, 덜컥 겁이 났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나는 이 책에 적혀 있을 말들이 무서웠다. 내가 애써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고 있는 말들을 이 책을 통해 듣게 될 것 같아 겁이 났다. 그래서 나는 책을 덮어서 책상 한 구석으로 밀춰놓고는 묵은 숙제를 회피하듯 책을 피했다. 그러느라고, 마음을 다잡고 책의 첫 장을 다시 펴는 데까지 닷새의 시간이 걸렸다.
어렵게 한 발짝을 떼고, 지금 나는 이 책을 3분의 1 정도 읽었다. 나를 서점 서가로 달려가 이 책을 사게 만든 부분, 죽는다는 건 결국 밖에서 놀고 있는데 업마가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르는 소리라는 부분도 읽었다. 그러나 책의 3분의 1 지점까지, 고갯길을 오르는 노인처럼 한숨을 몰아쉬어가며 천천히 읽고 있는 지금 마음에 박힌 구절은 다른 부분이다. 인간은 결국 타인의 아픔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부분이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타인에게 자신을 투영해 그 아픔을 간접적으로나마 조금 맛볼 수 있을 뿐,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그의 본질적인 아픔을 내 것처럼 느낄 수 없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그 말은 지극히 슬프기도 했고, 또 묘하게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가 떠나간 후 달이 두 번을 차고 기울었다. 나는 이제 외출했다 돌아온 집에서 아무도 나를 반겨주지 않는다는 걸 안다. 내가 우울해도, 뚱해 있어도 아무도 내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주지 않는다는 걸 안다. 10킬로그램짜리 쌀 한 포대를 사면 한 달 정도를 먹었지만 이제부터는 4킬로그램짜리 작은 포장을 사야 하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쓸 때마다 울지 않으려면 앞으로도 꽤 많은 시간이 흘러가야 할 거라고도 생각한다.
그냥 그런 생각을 한다. 내 것이 아니라 선물이었다는 걸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아무것도 당연하지 않았을 텐데.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 봐야 결국은 늦은 거라던가. 정말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