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부러진 얼음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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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여름이 오면 우리 집에서는 하루에 2리터짜리 생수가 한 병씩 동났다. 참고로 우리 집에서는 보리차를 끓여마시기 때문에 그 생수를 식수로 쓰진 않는다. 밥을 짓거나 국을 끓일 때 생수로 물을 잡지도 않는다. 그럼 도대체 뭘 하느라 생수를 쓰느냐 하면 주로 얼음을 얼리고 차를 냉침하는 데 썼다. 그래서 생수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은 여름이 오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방증이기도 했다.


몇 년 전이던가, 그와 나는 저렴한 생활용품점에 갔다가 얼음틀을 사 왔다. 두 개가 한 조로 되어 있는 것이었는데 손톱만 한 별 모양 얼음을 얼릴 수 있는 틀이었다. 워낙 조그만 얼음이 생기는 탓에 얼음을 빼는 게 쉽지 않았다. 얼음틀을 좌우로 비틀어 얼음통에 털고 나면 가 쪽으로는 빠지지 않는 얼음들이 꼭 몇 개씩 남아 있었고, 그것들을 털어내느라 얼음통에 대고 몇 번이나 탕탕 소리가 나도록 내리쳐야 했다. 그런 점들은 다소 번거로웠지만 유독 색깔이 예쁜 여름용 냉차에 남아 놓은 조그만 얼음들은 밤하늘에 반짝거리는 작은 별들 같아 보기가 좋았다. 커다란 유리잔에 조그만 별 얼음을 가득 넣고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여름의 별미 중의 하나였다.

그렇게 잘 써먹던 얼음틀 중 하나는 얼음을 빼내느라 틀을 비트는 그의 악력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졌고 하나가 남아 있었다. 이 녀석도 상태가 썩 좋지 않아 중간쯤에 가느다란 금이 가 있었지만 얼음 얼리는 덴 지장이 없으니 그냥 못 본 체하고 썼다. 그러던 얼음틀이 결국 어제 수명을 다해 부러졌다. 가 쪽으로 딱 한 개 안 빠진 얼음이 있어 그걸 빼보겠다고 얼음통에 대고 몇 번 내리쳤더니 쩍 소리를 내며 갈라져 두 동강이 나 버렸다. 나는 잠시 당황해서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와 함께 쓰던 물건 하나가 또 이런 식으로 내 곁을 떠나갔다.


물론 부러진 것 말고도 우리 집에는 아직 얼음 얼리는 틀이 두 개나 더 있다. 그와는 달리 나는 차에 얼음을 그렇게까지 많이 넣지 않으니 그것만 가지고도 나 혼자 먹을 얼음을 얼리는 데는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생활용품점에 가서 별 모양 얼음틀을 다시 사 와야겠다는 미련한 생각을 한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될 것 같다. 내 마음은 아직도 더운 여름날 그와 함께 별 모양 얼음을 넣은 냉차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던 그 시간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얘가 오빠가 많이 보고 싶었나 보다. 이런 식으로 따라가네. 나보다 낫다. 그런 생각에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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