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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01. 2022

가을엔 역시 국화

-202

혼자 지내는 단출한 살림에도 끊임없이 뭔가는 떨어지고 새로 사야 할 일들이 생긴다. 그 속도는 참 경이롭기까지 해서 나는 가끔 내가 내 인생을 함께하던 사람을 불과 반년 전에 잃고 실의에 빠져 있는 상태가 맞는지 가끔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그런 끝에 사는 게 결국은 그런 모양이라는 맥 빠진 결론을 내리고 혼자 피식 웃곤 한다.


저녁 무렵 한 개씩 먹곤 하는 요거트가 다 떨어져서 그걸 사러 마트에 갔다. 살 것은 그것뿐이었지만 집에서 1킬로쯤 떨어져 있는 마트까지 걸어온 성의를 생각해서 오늘은 어떤 물건들이 나와있는지 매장 안을 한 번 둘러보았다. 가끔 사놓으면 어디 써도 쓰는 돼지고기 앞다리살이나 목살을 100그램 당 천 원 정도에 팔기도 하고 라면 한 팩을 2천 원 남짓에 팔기도 하는 횡재를 가끔 만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장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나는 오랜만에 마트 안의 꽃 매대를 발견하고 한참이나 그 앞에 머물렀다.


요즘의 나는 마트에서 꽃을 잘 사지 않는다. 꽃집에서 사는 편이 훨씬 구색도 다양하고 꽃들도 싱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의 책상에 꽃을 꽂아놓는 나만의 세레머니는 결국 여기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와 함께 장을 보러 마트에 왔던 어느 날 나는 마트 안에 꽃 매대가 생긴 것을 발견하고 미친 척하고 한 줌 사다가 그에게 줄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스스로의 객쩍음을 견디지 못하고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이젠 영영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그날의 일을 불쑥 떠올리고,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마트로 달려가 프리지아 한 줌을 사다 꽃병에 꽂아 그의 책상에 갖다 놓은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는 요즘 내 일상을 버티어주는 버팀목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간만에 초심으로 돌아간 기분으로 매대에 진열된 꽃들을 둘러보았다. 이 매대에서 파는 꽃들은 무조건 한 다발에 3천 원이다. 그래서 해바라기나 백합 같은 꽃은 딱 한 송이만 따로 포장돼 있고 옥시페탈룸 같은 꽃은 이게 다 3천 원밖에 안 한다고? 싶을 만큼 잔뜩 포장돼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3천 원인데도 잔뜩 주는 꽃들은 대개가 그때가 제철인 꽃들이다. 어제는 국화가 그랬다. 세상에 이걸 3천 원 받고 팔면 이 꽃 키우는 사람들은 뭐가 남나 싶을 정도의 실한 다발들이 잔뜩 꽂혀 있었다. 나는 그 앞을 한참이나 서성거리다가, 아주 샛노란 색은 아니고 살짝 주황색이 나는 국화에 빨간 국화가 몇 송이 섞인 다발을 하나 골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도 나도 국화를 썩 좋아하지는 않았다. 뭔가 노숙해 보이는 꽃이라는 선입견도 있었고, 특히나 흰 국화 같은 경우는 장례식장에 많이 쓰이는 꽃이라 그런 것도 있었을 테다. 그러나 집으로 가져와 서둘러 손질을 해 꽃병에 꽂은 국화들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홀연히 가버릴 가을 그 자체처럼 느껴져서 나는 두 번 세 번 아, 꽃 잘 사 왔다는 말을 하며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가을엔 역시 국화지. 국화 한 번 안 보고 가을을 보낸대서야 말이 되냐고. 그런 너스레와 함께.


시간은 참 물결처럼 흘러서 벌써 11월이 되었다. 그를 떠나보낸 지도 어영부영 7개월 정도가 흘렀다. 나 참, 애쓴다. 혹은 욕 본다. 그런 생각을 한다. 조금 이른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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