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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02. 2022

별 수 없다

-203

해가 짧아지기 시작하면서 기상 시간을 30분쯤 늦췄다. 밖이 너무 깜깜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무렵의 아침 공기가 좀 버거울 만큼 춥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이젠 슬슬 이불 밖으로 단번에 뛰쳐나가는 것이 슬슬 힘들어지는 시기가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30분 정도야 뭐 어떨까, 그런 생각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뭐든 그렇지만, 사람이 정한 일은 한 번 느슨해지기 시작하면 조금씩 느슨해진다. 요즘 나는 더러 일곱 시까지 늦잠을 자고 오늘 같은 경우는 눈을 떠보니 일곱 시 20분이었다. 덕분에 아침에 간단한 할 일을 하고 책상 앞에 앉는 시간이 한 시간 가까이 늦어져버렸다.


기상 시간을 30분 늦췄다고 해서, 늦춘 기상 시간에서 30분 한 시간 정도 늦잠을 잤다고 큰일 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아침에 시간 맞춰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도 아니고 새벽 일찍 일어나 해야만 하는 일이 쌓여 있는 사람도 아니다. 아침을 챙겨 먹이고 출근이나 등교를 시켜야 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예 예전처럼 아홉 시까지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다 한들 그 사실을 타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잠을 잔 날은 그지없이 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아직도 아침 여섯 시까지 자리에 누워있는 것조차 버겁던 지난봄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땐 정말 그랬다. 눈을 떠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면 어김없이 다섯 시 20분에서 30분 사이의 어느 지점이었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서 뭘 할 거냐고 중얼거리며 억지로 눈을 감고 누워, 정작 잠은 들지 않고 머릿속을 휘젓는 온갖 복잡한 상념들에 시달리다가 결국 다섯 시 40분 정도에 등을 떠밀리듯 마지못해 일어나곤 했던 그 시간들. 물론 그때는 지금보다 날이 빨리 밝아왔었고 아침 공기도 요즘처럼 차갑진 않았었다. 그러나 나는 그게 단순히 그런 이유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래서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날은 참담해진다. 이런 식으로 무뎌져 가는 거구나 하는 생각에.


가끔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그가 없어도, 그가 없이도 혼자 밥 잘 먹고 잠 잘 자고 웃고 떠들며 즐겁게 사는 그런 일상을 원하는 걸까. 글쎄. 그게 꼭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 같다. 나는 가끔, 아니 꽤나 자주 그가 없는 내가 혼자 너무 잘 지내는 것 같아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난 것도 아니고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혼자서 뭔가를 먹고 뭔가를 하고 밤이 오면 잠들고 아침이 되면 일어나는 이 범상한 루틴을 꾸역꾸역 돌고 있는 것이. 조금 더 힘들고 아파야 정상인 게 아닐까. 조금 더 망가져야 정상인 게 아닐까. 험한 생각까지야 하지 않더라도, 조금은 더 아무것도 할 마음이 들지 않아야 맞는 게 아닐까. 내 곁애 27년이나 존재하던 사람을 잃어놓고, 너무 빨리 멀쩡해지는 건 안 되는 일인 게 아닐까. 나는 끊임없이 그런 생각을 한다. 한 발만 떨어져서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객관적으로 그렇게까지 잘 지내는 상태도 아닐 것일 텐데도.


야야 그만해. 꼴랑 아침에 한 시간 늦잠 잔 거 거지고 혼자 기와집을 열두 채씩 짓고 부수고 하고 앉았네. 바로 윗 문단까지를 쓰고 잠시 멍해진 중에 고개를 돌리다가 눈이 마주친 사진 속의 그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의 말이 맞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꼭 그만큼이나, 오늘 아침 눈을 떠 일곱 시 20분이라는 시간을 확인한 나의 기분은 그랬다. 너도 별 수 없구나. 그렇게 평생 슬퍼하면서 살 것처럼 굴어놓고, 이제 슬슬 늦잠이나 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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