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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07. 2022

그래도 더운 게 낫다

-208

사람의 간사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더위와 추위, 혹은 여름과 겨울에 대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잠 못 드는 열대야가 며칠씩 계속되는 한여름에 우리는 차라리 추운 게 낫지 너무 지치고 힘들다고 투덜거린다. 반대로 눈이 내린 길가가 얼어붙어 종종걸음을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곤 하는 겨울이 오면 우리는 차라리 더운 게 낫지 사람이 이러고 어떻게 사느냐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우리의 인생이란 이런 식으로, 여름엔 차라리 겨울이 좋았다고 투덜거리고 겨울이 오면 차라리 여름이 견디기 수월했다고 불평하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과정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요 며칠 새 부쩍 한다.


태어난 후 거의 처음으로, 오롯이 혼자 맞는 겨울의 초입이라 그런지 유달리 춥게 느껴지는 요 며칠이다. 이미 20년도 전에 그를 먼저 서울로 보내고 나 혼자 2년 정도 보냈던 기간이 있었지만 그때 나는 가족들과 함께 살아서 이런 식의 '추위'를 느낄 일은 별로 없었다. 내 곁에 아무도 없이, 온전히 혼자인 상태로 맞는 첫 겨울은 벌써부터도 제법이나 만만치 않아 올 겨울 어떻게 날 것인가 하는 걱정을 벌써부터 하게 만든다.


몇 년 전 생각 없이 집을 나섰다가 사고를 당해 몇 달간 집에 돌아오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그게 꼭 지금 무렵-그러니까 가을부터 다음 해 1월까지였다. 그 서너 달 동안 느꼈던 첫 번째 소회는 '집이 왜 이렇게 춥냐'는 것이었다고 그는 한참이나 지난 후에 말한 적이 있었다. 더운 걸 싫어해서 한겨울에도 집안에서는 반팔 티셔츠를 입던 그였지만 그 몇 달 동안은 집 안에서도 플리스 집업을 입고 지퍼를 목 끝까지 채우고 지냈다는 말과 함께. 당시의 나는 그 말을 듣고 보일러 좀 틀지 그랬냐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그의 성격상 내가 집에 없던 서너 달 동안 씻을 때나 설거지를 할 때를 제외하면 보일러를 틀지 않고 지냈을 것이 분명해 보여서. 그러나 내가 그 입장이 되어보니 이건 보일러를 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집안의 공기 자체가 썰렁해져서 무슨 짓을 해도 데워지지 않는다. 방 안에 머물다 거실이나 주방으로 나가보면 그 적막하고 서늘한 공기에 가끔은 숨이 막히기까지 한다. 사람에게도 복사열이 있고 그래서 추울 때의 사람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36.5도의 열을 내는 난로의 역할을 한다고 학교에 다니던 시절 과학 시간에 들은 기억이 있는데 그 말을 이런 식으로 깨닫게 되는구나 싶기도 하다.


결국 나는 가을 이불을 꺼낸 지 한 달 남짓 만에 오늘 겨울 이불을 꺼냈다. 이런 식으로 미련을 떨며 추위를 참고 견딘다고 해서 누가 상을 줄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내가 나를 돌볼 수밖에 없는 거라면 그렇게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서였다. 침대 위에 깔린 겨울 이불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제 11월 초입부터 이렇게 호들갑이라 올 겨울을 도대체 어떻게 날 것인가 하는 걱정에 한숨이 난다. 역시, 그래도 더운 게 나았어. 그렇게 나는 불과 반년 안에 뒤집혀질 그렇고 그런 불평을 늘어놓으며 책상 위 그의 사진을 흘끗 바라본다. 어쩔 거야. 벌써 이래서 앞으로 서너 달 어떻게 살 거냐고. 나 혼자 어쩌라고 이렇게 불쑥 도망간 거야. 그러나 그런 지청구에도 그에게서는 아무 대답이 없다. 이젠 네가 좀 알아서 하라는 그런 뜻인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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