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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08. 2022

아직도 할 말이

-209

10월에 들어서면서 매주 가던 상담을 2주에 한 번으로 조금 텀을 늦추었다. 언제부턴가 상담소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오늘 상담 시간 동안은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미리 대본을 짜고 혼자만의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뭐가 맞는 건지 잘은 모르지만 이런 식의 매너리즘에 빠져서는 내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선생님께서도 2주에 한 번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고 흔쾌히 동의해 주셨다.


가끔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상담을 계속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곤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그 해결책도 해답도 이 세상 그 누구도 갖고 있지 못한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내 마음이 아픈 것은 그가 나를 두고 먼저 떠났기 때문이니 지금이라도 그가 돌아오면 해결될 것이겠지만 나를 위해 그런 짓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지구를 거꾸로 돌려 시간을 역행시킬 수 있는 슈퍼맨 말고는 없을 것이다. 나에게, 그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내가 납득할 만큼 설명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좀 더 빨리 나아질 수 있겠지만 내게 그 답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이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는 인류 중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와중에, 이 상담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가 하는 것 또한 내가 결정해야 할 몇 가지 사항 중 하나인 셈이다.


그가 떠난 후 나의 일상은 그지없이 단조로워졌다. 내 인생에 있어서의 그는 거의 유일한 변수였고 그 변수가 사라져 버린 지금의 내 일상은 그야말로 판에 박은 듯 날마다 똑같이 흘러가고 있다. 그 일상에 약간의 변화라도 줄 수 있는 뉴스나 방송, 요즘 히트하는 노래 등등의 요소를 내가 일부러 배제해 버려 더욱 그렇게 흘러가는 느낌도 없지 않다. 나는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비슷한 루틴으로 오전 시간을 보내고, 비슷한 시간에 밥을 먹고 비슷한 일을 하며 오후를 보내다가 대개 비슷한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이런 판에 박힌 일상을 보내다 보니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거리'는 거의 생겨나지 않는다. 내가 이 상담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한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다. 이런 삶을 살고 있는 내가, 아마도 당분간은 이렇게 살 것 같은 내가 과연 이 상담을 계속하면서 한 시간이나 남 앞에서 이야기할 뭔가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부담감이랄까.


그러나 참 놀랍게도, 막상 선생님을 만나고 그 앞에 앉으면 나는 마치 모노드라마의 배우처럼 한 시간을 원맨쇼 하듯 신나게 떠들고 온다. 말을 하다가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내 흥에 못 이겨 손을 내젓거나 휘두르기도 하고 가끔은 울컥 북받쳐 눈물을 쏟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가끔 당혹스럽기도 하다. 벌써 반년 넘게 상담을 받았고 이렇게나 매일매일 판에 박힌 일상을 사는데도, 아직도 그렇게나 할 이야기가 남아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하긴 일주일 혹은 이주일에 한 번 한 시간씩 이야기를 하는 상담 시간에 할 이야기가 남아있는 건 매일 브런치에 일정 분량 이상의 글을 쓰고 있는 것에 비하면 그리 놀랄만한 일 같은 건 아닌지도 모른다. 이렇게 뻔하디 뻔한 하루하루를 살면서도, 나는 여전히 브런치에 와서 글 한 타래를 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하니까. 아직도 내 속에, 내 밑바닥에 '긁어내면 긁어지는' 무언가가 남아있다는 사실은 가끔은 참 놀랍기도 하고 가끔은 참 어이없기도 하다. 아직도 무슨 할 말이 그렇게나 많이 남은 걸까.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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