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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09. 2022

다시 한번 유성우를 볼 수 있다면

-210

어제 개기월식이 있었다는 모양이다. 월식에 달의 뒤로 천왕성이 가려지는 현상까지 겹치는 이런 일은 2백 년인지 3백 년인지 후에야 또 볼 수 있다고 하니 내 짧고 유한한 생에서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볼 기회였던 셈이다.


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린 시절 천문학자를 장래희망으로 잠깐이나마 품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삶에 찌들어 그런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더라도, 오늘 저녁 페르세우스 자리 유성군이 관측된다는 뉴스를 보고 나면 괜히 밤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그와 나도 그랬다. 유성군이 내린다는 뉴스가 나는 날이면 그와 나는 숫제 돗자리까지 챙겨서 옥상으로 올라가 옥상 바닥에 누워 한참이나 밤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밤공기에 빨갛게 얼은 뺨을 하고 집으로 내려오곤 했었다.


그런 나였으므로 어제의 개기월식에도 나름 기대가 있었다. 뭘 어쩌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한번, 아 저게 월식이군 하고 내 눈으로 한 번 보는 것 정도로 그쳤을 일이다. 내게 무슨 전파망원경이 있어 달이 가려지는 모습을 시시각각 관찰할 수 있었을 것도 아니고, 달에 천왕성이 가려지는 장면을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었을 리도 없다. 그저 어느 날 저녁 창문을 닫으러 나갔다가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보고 아 오늘이 보름이던가 하고 생각하는 꼭 그 정도를 기대했었을 뿐이다.


그러나 어제의 개기월식은 내게 그 정도의 감흥도 나누어주기 싫었던 모양이다. 내가 사는 인근에는 어제 오후부터 내내 구름이 끼어 있었다. 이래 가지고는 이따가 월식도 못 보겠네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랬다. 저녁 무렵 못내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나 창문을 내다보았으나 뿌옇게 변한 저편 하늘 너머로 불그스름한 달이 아주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이래서는 저게 월식인지, 아니면 그냥 대기가 좀 산란한 날에 뜬 붉은 달인지조차도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2백 년인지 3백 년인지 후에야 볼 수 있다는 천왕성 엄폐와 겹치는 개기월식은, 내게는 그렇게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됐어. 내가 못 봤으니 무효야. 저녁 여덟 시쯤, 결국 완전히 포기하고 블라인드를 내리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와 함께 옥상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 유성우를 보던 그때, 나는 그 쏟아지는 별들에게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일일이 생각나진 않지만 대충 뻔하다. 로또 일등. 힘들게 일해놓고 돈 못 받은 몇몇 일들에 대한 수월한 해결. 그런 지극히 속되고 범상한 것들을 빌었을 것이다. 그때 그런 것 말고, 내 곁에 있는 이 사람이 내내 건강하게 내 곁에 있기를 빌었더라면 그 소원은 이루어졌을까. 2백 년인지 3백 년만인지 한 번 온다는 천왕성 엄폐와 겹치는 개기월식의 시대를 살면서 그 장관을 결국 목격하지 못하고 비껴가 버린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본다. 그때 나는, 로또 일등 따위가 아니라 당신의 행복을 빌었어야 했다고.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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