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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10. 2022

이제 뉴스도 좀 보고 그래야지

-211

이미 몇 번이나 쓴 대로, 자의 반 타의 반 뉴스며 실시간 방송을 끊고 흘러간 지난 방송의 vod 속에서만 살고 있는 게 벌써 반년이 넘었다. 그리고 사람의 모든 행동에는 관성의 법칙이 어김없이 작용해, 이대로 놓아두면 나는 아마 남은 인생을 내내 이렇게 살게 될 것이다. 사람이란 의외로 나약한 존재여서 하던 것을 하지 않는 것에도 하지 않던 것을 하는 것에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말이다.


며칠 전 열어본 포털의 메인 페이지에서 나는 손흥민 선수의 부상 소식을 간단하게나마 접했다. 얼마 남지 않은 남은 월드컵에 출전이 불투명 운운하는 말과 함께. 잠깐만, 뭐라고?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으로 멍청하게 달력을 올려다보다가 월드컵 일정을 검색해 보았다. 세상에. 11월 20일이 개막이다. 이번 주가 지나고 다음 주 일요일이 되면 개막인 셈이다. 아. 시간이 벌써 그렇게나 흘렀나.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는 축구를 좋아했다. 그는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거의 혼자 힘으로 이탈리아를 결승까지 올려놓고도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어림도 없는 실축을 해버린 로베르토 바조를 좋아했었다. 축구란 일본과 우리나라의 국가 대표 경기가 있을 때나 가끔 보던, 그나마도 90분에 달하는 경기 시간이 너무너무 지루해 몸을 배배 꼬던 '축알못'이던 나는 그에게서 축구 보는 법을 배웠다. 98 프랑스 월드컵 때는 어느 팀이 우승할 것인가를 놓고 소소한 내기를 했고 2002년 월드컵 때는 강남역으로 뛰쳐나가 얼굴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섞여 밤새도록 춤을 추며 뛰어다녔다. 그 모든 것들이 귀찮아진 후에도,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 유로, 매 시즌 돌아오는 챔피언스 리그는 그와 나에게는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러시아 월드컵 때의 독일전, 손흥민 선수가 쐐기골을 넣던 순간 그와 나는 탕탕 소리가 나도록 침대 매트리스 위에서 발을 구르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비명을 질렀다. 이번 월드컵 조 추첨식을 보면서는 아마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처럼 우리나라의 결과보다 일본의 대진운에 박장대소를 터트리기도 했었다.


그랬던 월드컵이 이제 열흘 앞으로 다가와 있고, 응당 그 월드컵을 같이 봐줄 것이라 생각했던 그는 떠나고 내 곁에 없다.


나는 아직도 뉴스를 보지 못하고 실시간 방송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월드컵은 웬만하면 좀 봐보려고 한다. 축구를 보는 재미는 그가 나에게 가르쳐준 많은 것들 중의 하나이고, 어째서 그런지 내게는 그의 몫까지 두 배로 월드컵을 봐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있어서다. 뭐든지 시작이 어렵다. 그렇게 월드컵을 보고 텔레비전의 채널들과 화해를 하고 나면, 조금씩 시간이 실제로 흘러가는 방송들도 하나 둘 보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받아들이든 그러지 못하든 시간은 묵묵히, 꾸역꾸역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조금씩 인정해가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일 것이다. 하필이면 이때쯤 월드컵이 열리는 것도, 이제 좀 적당히 하고 뉴스도 좀 보면서 살라는 그의 뜻이 아닐까. 그런 택도 아닌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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