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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Nov 22. 2022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이야기

-223

얼마 전 나는 포털 사이트 메인에서 한 성범죄자가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했다는 뉴스를 봤다. 그 지역은 집에서 그리 가까운 곳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듣고 나는 괜히 밖으로 나가 도어록에 수동 잠금을 설정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혼자 사는 여자들은 물건을 살 때 남자 이름으로 주문을 하고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때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2인분을 주문하며 배달원이 올 무렵이 되면 스피커로 남자 목소리를 틀어놓기도 한다는 건 꽤나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러나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것에 신경을 써 본 적이 없었다. 내 곁에는 늘 그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나 또한 그런 이야기들에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나는 문득 그런 것을 실감했다.


인터넷에서 보고 웃어넘겼던 글들 중에는 그런 것도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은 욕실에 안 쓰는 핸드폰을 한 대 갖다 놓아야 한다고. 핸드폰에는 유심칩이 들어있지 않아도 긴급전화는 가능하기에, 샤워를 하고 난 후 문이 열리지 않는다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그 핸드폰으로 119에 구조 신고를 해야 한다고. 가끔 욕실의 문 손잡이가 유달리 뻑뻑하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떠올린다. 이 역시도, 그간의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이었다. 문을 두드리며 목청을 좀 높여서 도움을 요청하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그렇지 않다.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나를 위해 문을 열어줄 사람은 이젠 아무도 없다.


가끔 생각한다. 도둑이니 강도니 하는 일들을 다 빼더라도, 나 스스로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경우를 빼더라도, 내가 이 집안에서 예상치도 못한 일을 당하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욕실에서 물이 덜 마른 바닥에 미끄러져 머리를 찧는다거나, 뭔가를 먹다가 기도가 막혀 숨을 쉬지 못하게 된다거나, 팔이나 다리가 부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때는. 에이, 그런 건 아주 재수 없는 사람들한테나 일어나는 일이지 라고, 몇 개월 전의 나라면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봐 버렸다. 사람의 목숨이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얼마나 허망하게 시드는지를. 그에게 일어난 일이 내게도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 같은 게 어디에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러나 그 문제에는 답이 없다. 내가 나 혼자 이 집에서 지내는 이상, 그런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 같은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약간의 '죽지 않고 살아서 잠자리에 들 정도의 행운'이 힘닿는 데까지 나를 지켜주기를 바라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내 곁에 있었던 사람이 빠져나가버린 빈자리에는 이런 씁쓸한 두려움만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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