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길눈이 밝았다. 한 번 갔던 길을 절대로 헤매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와중에 꼼꼼하기까지 해서 초행길을 가는 날이면 네이버의 지도 서비스를 켜놓고 일일이 로드뷰를 보며 자신이 갈 길을 미리 확인해 놓았다. 시야도 넓고 반사신경도 좋은 사람이어서 내가 아는 한 그가 사고를 낸 적은 25년이 넘는 그의 운전경력 기간 동안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2종 보통으로 땄던 면허가 몇 년 후 1종 보통으로 변경되기도 했었다.
그러던 그는 꼭 1년 전, 작년 4월에 운전을 포기했다.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면서부터였다. 어차피 차 가지고 나가면 주차할 일로 스트레스나 받고, 멀지 않은 거리는 버스 타고 나가서 조금 걷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고 그는 말했었다. 운전하다가 무슨 일 생겨서 나 혼자 죽으면 다행인데 내 차에는 대개 네가 같이 동승하고 있으니 너까지 사고당하면 안 되지 않겠냐는 것이 그의 말이었다.
너무 운전을 잘하는 사람의 곁에서 그의 운전을 지켜봐 온 탓인지, 나는 차를 운전하는 일에 지레 겁을 먹고 아예 면허를 딸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나는 길치라 내비게이션에서 좌회전하라는 곳을 지나쳐 버리거나 몇 갈래 갈라지는 길에서 몇 시 방향이라는 말이 빨리 이해되지 않아 다른 길로 들어서거나 하면 패닉에 빠져 우왕좌왕하다가 뒤차들의 미친듯한 경적 세례를 받게 될 거고 쓸데없이 겁이 많아 차선 변경 같은 건 꿈도 못 꿀 거라는 게 나의 핑계였다. 그래서 나는 결국 그가 이렇게 내 곁을 떠나는 순간까지 운전면허를 따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떠난 우리 집에는 나와 이젠 몰 사람도 없는 그의 차가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의 삼우제 날 나는 그의 봉안당에 차의 스마트키를 가져다 놓았다. 거기서라도 그 좋아하던 운전 실컷 하고, 속도제한도 없을 그곳의 고속도로 신나게 달리라는 말을 하고 돌아오면서 나는 차를 폐차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차는 그의 소유물 중 가장 애착을 가졌던 물건이었다. 연식이 조금 되기도 했고 타지 않는 1년 사이 차가 많이 낡아 있어서 중고로 파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냥 그의 곁에 보내주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1년 사이 배터리가 방전돼버린 차는 시동조차 걸리지 않았다. 폐차하시는 분과 약속을 잡아놓고, 전날 밤 나는 차에 들어있는 이런저런 물건들을 끄집어내 버릴 것은 버리고 도저히 버릴 수 없는 것들은 집으로 싸안고 들어왔다. 그리고 운전석 상단의 포켓에서 그가 몇 년 전 운전면허를 갱신할 때 썼던 증명사진을 발견했다.
그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당일치기로 여행을 가서 사진 찍기 좋은 곳을 발견해도 그는 늘 내 사진만 찍어줄 뿐 자신의 사진은 찍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떠나고 난 후 나는 핸드폰 갤러리에 그의 사진이 단 한 장도 남아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또 한참이나 운 적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발견한 그의 증명사진은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기뻤고 고마웠다.
나는 집 근처 사진관에 전화를 해 파일이 없고 증명사진 실물만 있는데 이걸 좀 크게 뽑아주실 수 있는지를 물었다. 사진의 크기 자체가 작아서 아주 크게는 힘들겠지만 어지간한 크기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는 답을 들었다. 나는 다음날 아침 사진관으로 찾아가 그의 증명사진 재촬영을 맡겼다. 내일쯤 찾으러 오시라더니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연락이 왔다. 일단 출력까지 전부 끝났는데 급하시면 오늘 오셔도 됩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앞뒤 잴 것도 없이 벌떡 일어나 다시 사진관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비닐봉지에 든 그의 사진을 받아 들고는, 혹시나 누가 빼앗아가기라도 할까 봐 소중하게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미리 사놓았던 액자에 사진을 넣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너무 기뻐서, 너무 반가워서 연신 웃었다. 그가 떠나간 지 꼭 19일 만이었고 수의를 입고 관 속에 누운 그의 마지막을 본 후로 16일 만이었다. 나는 그가 먼저 대학을 졸업해 서울로 취업하고 나는 부산에 남아 학교를 다니던 2년 간 그와 떨어져 지낸 이후로 이렇게나 오랫동안 그를 만나지 못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 책상 위에 놓인 그의 액자는 요즘 내 갖은 푸념과 투정과 원망과 청승을 받아 주느라 분주하다. 얼굴을 보고 말을 걸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대단히 큰 위안이 되는 일이라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사진 한 장 넣어주지 못한 그의 봉안당에도 이젠 사진을 갖다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한 사람이 사진 한 장으로나마 내 곁에 남아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모든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남는 건 사진뿐이다. 그러니 부디 함께 있을 때 많이 찍으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