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그와 이별한 후 주변 사람들이 권하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심리 상담을 받으라는 것. 두 번째는 빨리는 안 되겠지만 근일 내에 이사를 가라는 것. 세 번째는 반려동물을 키우라는 것. 첫 번째는 하고 있는 중이고, 두 번째는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닿아있는 이 집을 과연 떠나야 하는가 하는 점에 대한 판단이 잘 서지 않는 상태라 보류 중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웬만하면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가끔 그와 장난을 치는 분위기일 때 나는 그를 '고냥이' 혹은 '냥이'라고 불렀다. 그가 호랑이띠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고양이와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깔끔하고, 예민하고, 촉이 좋고, 그러면서도 가끔 어처구니없이 허당스러운 모습들이. 가끔 기분 전환할 겸 놀러 가는 캣 카페가 있었는데 그곳의 고양이들이 죄다 나는 본척만척하고 그에게만 들러붙어 어리광을 부려대서 걔들이 동족을 알아보나 보다며 투덜거리던 기억도 있다.
어디나 그렇겠지만 우리 동네에도 길고양이가 많다. 오래 차를 몰고 나가지 않은 날이면 차 아래에 동네 길고양이들 두셋이 들어가 식빵을 굽고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기도 했다. 그는 내 눈에는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녀석들을 하나하나 구분해 어느 녀석은 흰 바탕에 검정 무늬가 있대서 바둑이, 얼굴의 반만 검정 얼룩이 있어서 아수라, 어느 녀석은 유독 퉁퉁한 몸집에 뺨 옆으로 심술보가 잔뜩 붙었다고 대감님 하는 식으로 이름을 지어놓고 불렀다. 그래서 요즘도 집 밖을 나서다가 그가 이름을 지어놓은 고양이들을 마주치면 잠시 애틋한 기분에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쳐다보게 되곤 한다.
그래서 그가 훌쩍 떠나버리고 텅 빈 집에 혼자 남은 요즘 가끔 고양이라도 한 마리 키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다. 브런치에서도 가끔 본다. 내 옆에 생명을 들이고, 그 생명을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보면 거기서 많은 위안을 얻게 된다는 글들을. 그리고 내가 생각해도 그럴 것 같다. 너무 오래 그의 곁에서 살아온 나는 내 옆에 아무도 없다는 감각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요즘에야 불쑥불쑥 살아있는 것 특유의 온기가 그립다는 생각을 한다. 고양이라도 한 마리 키우면, 그래서 그 작은 생물이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잘한 사고도 치고 야옹야옹 울기도 하고 밥과 물을 주면 맛있게 먹기도 한다면 조금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듯한 이 기분을 메워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전혀 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위에도 썼듯이, 나는 어지간하면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고양이는 내게 무언가의 대체품이 되기 위해 생겨난 존재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녀석에게 그의 이름을 붙여주고 싶지 않고 그를 대하듯 녀석을 대하고 싶지 않다. 녀석을 붙잡고 왜 이렇게 갑자기 나를 두고 떠났느냐는 푸념을 늘어놓고 싶지 않고 그의 생일날 녀석에게 특별한 간식을 주고 싶지도 않다. 녀석은 그런 존재가 되려고 태어난 게 아닐 테니까. 내게는 녀석을 그의 대용품으로 삼을 권리 같은 게 없을 테니까. 그래서 내가 고양이를 키운다면 제법 긴 시간이 지난 후에, 그를 대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고양이를 기르고 싶은 그 순간이 온 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