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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Dec 11. 2022

6개월이 지나면

-242

인터넷의 검색 알고리즘이라는 건 가끔 용한 무당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가끔 뭔가가 필요하지만 정확히 어떤 것이 필요한지도 모르는 채로 변죽을 올리는 검색어를 몇 개 집어넣고 깔짝거리고 있노라면 너 지금 이런 거 찾고 있지? 하면서 뭔가를 척 꺼내 내 눈앞에 갖다 놓는 것이다. 그 결과는 가끔 뜨끔 놀랄 만큼 지금의 내 니즈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을 때가 있다. 비근한 예로 나는 그런 식으로 지금 반년 넘게 키우고 있는 무화과나무를 집에 데려왔다. 보통의 무화과나무는 사람만큼이나 키가 크고, 그래서 웬만해서는 화분에 잘 키우지 않고 땅에 심기 때문에 내가 찾는 창가에 아담하게 올려놓을 만한 무화과 화분을 찾는 것은 그리 만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어려운 걸 인터넷 알고리즘은 기어이 해냈던 것이다.


어제의 인터넷 알고리즘은 그런 식으로, '가족과 사별한 사람이 그 사실을 수용 혹은 체념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는 대략 6개월이 걸린다'는 어떤 글을 내 눈앞으로 갖다 놓았다.


사실 그 글은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쓴 글은 아니었다. 박완서 선생님의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책 이야기를 하려던 중에 서두로 꺼낸 것이 그런 문장이었다. 나 또한 그분의 글을 좋아했지만 제목만 알던 그 책이 넉 달 상간에 남편과 아들을 차례로 잃고 그 고통에 몸부림치던 과정에서 쓰여진 글이라는 사실은 어제야 처음 알았다. 말이 채 나오지 않았다. 좋아하던 작가에게 이런 일이 있었던 것도 몰랐다니. 인생 헛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직도 가끔 생각한다. 그가 나의 자식이 아니었기에 그나마 내가 지금 조금은 덜 아픈 것이리라고. 내 속에 열 달을 품에 세상에 내놓은 존재가, 내가 그렇게나 애지중지하며 키워서 제 발로 걷고 제 입으로 말하고 제 손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존재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그 말 못 할 슬픔을 내 눈으로 목도한다면 나는 과연 살 수 있을까. 그에게 조금은 미안한 말이지만 그가 내 자식은 아니었기에 지금의 내가 이만큼이라도 살 엄두를 낼 수 있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편과 자식을 넉 달 사이에 차례로 잃다니. 그게 어떤 것일지, 나는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해는 하필 1988년이었다고 한다. 온 나라가 올림픽의 기대와 설렘으로 몸살을 앓고 있을 그때 그분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둘이나 잃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던 것이다. 일부 발췌된 본문 중에도 그런 말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슬픈데 세상은 왜 이렇게 들떠 있는 거냐고. 그 심정이 너무나 이해가 가서 한동안 멍해져 있었다.


그가 떠나간 지 이제 8개월이 되었다. 나는 어영부영, 한 해의 3분의 2를 그 없이 버텨가고 있는 중이다. 이제 넉 달이 더 지나면 그에게 첫 제사상을 올리게 될 것이다. 6개월이 지나면 체념하고 수용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거의 울지 않는다. 아주 울지 않는다고까지는 못하겠다. 아직도 그에 관한 많은 것들은, 미용실에 갔다 온 날 입었던 옷의 목둘레에 박힌 짧은 머리카락처럼 불쑥 튀어나와 내 마음을 찌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지금의 내 마음은 지나간 봄의 그것과는 같지 않다. 그 사실은 일견 대견하기도 하고 일견 씁쓸하기도 하다. 그냥 이렇게 무뎌져 가는 걸까. 어쩌면 산다는 게 결국 그런 것일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박완서 선생님은 지난 2011년 작고하셨다. 그분은 피안 그 어딘가에서, 먼저 떠나보내고 그렇게나 가슴을 쥐어뜯은 부군과 아드님을 다시 만나셨을까. 문득 그런 것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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