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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Dec 21. 2022

뒤꿈치가 닿는 순간

-252

아주 오랫동안 운동과 담을 쌓고 지냈다.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뭐 그런 흔한 핑곗거리들이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내 몸은 굳어졌고 여기저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뒷목이며 어깨가 돌덩어리처럼 굳어져서 누가 꾹 잡기만 해도 비명이 나올 만큼 아팠고 슬금슬금 붙기 시작한 군살 덕분에 정상 체중을 한참이나 벗어났다. 몸의 대칭은 틀어져서 차렷 자세로 벽에 딱 붙어 서있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그를 떠나보낸 후, 아침 정리를 마쳐놓고 간단한 홈트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무너지는 나를 떠받히기 위한 루틴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지금이야 아주 조금 나아졌다지만, 지난봄까지의 나는 정해진 시간표가 없이는 혼자서 밥 한 술 떠먹는 것조차 힘에 부칠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이제 나를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일종의 위기의식이었다. 이젠 내가 나를 돌봐야 했다. 그러자면 이런 엉망진창인 몸 상태로는 안 됐다. 다행히 유튜브에는 집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홈트 루틴들이 다양하게 올라와 있었고 나는 그중 적당해 보이는 것 하나를 골라 매일 아침 하고 있다. 하루도 빼먹지 않았으니 얼추 8개월쯤 한 셈이다.


운동을 하고 마무리 스트레칭 겸 요가 동작 몇 가지를 한다. 그중에 '개 자세'라는 것이 있다. 요가라는 단어에서 연상할만한 기기묘묘한 동작도 아니고, 그냥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땅에 댄 상태에서 무릎을 펴고 엉덩이를 들어서 A자를 만들면 되는 아주 간단한 자세다.


그런데 이 간단한 자세는 나를 적이 당황시켰다. 처음 이 자세를 했을 때, 나는 쭉 펴지지 않는 내 무릎과 바닥에서 거짓말 좀 보태 한 뼘쯤 뜨는 내 뒤꿈치에 당황했다. 이게 안 된다고? 이게? 다리를 들어 목 뒤에 얹는 것도 아니고 양다리를 180도로 쭉 벌려 바닥에 붙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서서 바닥을 짚는 것 같은 이 자세가 안 된다고? 그러나 안 됐다. 오기가 나서 억지로 무릎을 펴려다가 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비명을 질렀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된통 당하고, 나는 그냥 내 몸이 그만큼이나 엉망진창이라는 뜻이구나 하고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몇 달간, 나는 어정쩡하게 구부러진 무릎과 까치발을 든 것 같은 뒤꿈치를 한 상태로 매일 아침 몇 분씩 이 자세를 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드디어 무릎이 펴지고 뒤꿈치가 땅에 닿기 시작했다.


내 몸은 아직도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다. 매일 아침 재 보는 체중계의 분석에 의하면 8개월 전에 비하면 몰라보게 좋아지긴 했다지만 아직도 내 몸의 여러 가지 수치는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신체적인 전성기를 한참 지난 데다 그동안의 무관심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이라 내가 이 몸을 어디까지 고쳐서 그럭저럭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최소한 8개월 전 그때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졌다는 사실 하나만은 다행이지 않을까. 어차피 내게는 이제 시간이 많고, 뭔가를 개선할 여지도 그만큼 많이 남아 있을 테니까.


이런 자그마한 성취를 이루어봐야 이젠 자랑할 곳이 없다는 것이 좀 안타까운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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