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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an 13. 2023

2분이라는 시간

-275

아침마다 정리를 마치고 하는 내 홈트 루틴에는 플랭크 2분이 들어 있다. 모르긴 해도 내 하루 24시간 중에서 제일 더디게 가는 2분이 아닐까 싶다. 유튜브를 보면 플랭크 자세에서 농담도 하고 노래도 따라 부르고 온갖 여유를 다 부리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나는 아직 그 2분 동안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컨디션이 조금 좋지 않거나 유독 몸을 버티는 발이 줄줄 미끄러지는 날이면 1분을 겨우 지난 상태에서도 비명을 지르기도 한다. 내가 유별난 건지 원래 이런 건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플랭크는 2분 이상 하는 거나 2분 하는 거나 별로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딱 2분에서 더 시간을 늘리진 않고 있는데 이게 어느 만큼 신빙성이 있는 말인지도 잘 모르겠다.


처음 아침에 운동을 시작할 때만 해도 2분은 고사하고 30초도 어림없었다. 제일 처음에는 10초씩 세 번을 끊어서 30초를 겨우 채웠다. 물론 그 10초조차도 허리는 아래로 빠지고 발끝과 팔꿈치로 겨우 몸을 지탱한 엉망진창인 자세였다. 그러다가 20초씩 세 번을 끊어 1분, 30초씩 두 번 끊어 1분, 1분씩 두 번 끊어 2분, 한 번에 2분 하는 식으로 야금야금 늘려와서 지금은 그래도 한 번에 2분 정도는 버틸 수 있게 되었다. 이 '변화'는 얼마 전 브런치에도 한 번 쓴, 엎드린 개 자세를 할 때 이젠 뒤꿈치가 어렵지 않게 땅에 닿는 것과 더불어 내가 체감하는 내 몸의 조그마한 변화다.


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그의 일인 것은 가끔은 내게는 견딜 수 없는 아이러니로 느껴지기도 한다. 심지어 그 목적이 '오래 살려고'가 아니라 '내 정신으로 내 마지막을 결정할 만큼의 건강을 위해서'인 점에서도 그렇다. 그에게는 그래도 내가 있어 이런저런 뒷수습을 했지만 이제 내게는 아무도 없다. 나는 최소한, 내 몸에 뭔가 이상이 생겼을 때 내 힘으로 119에 전화를 거는 것까지는 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 이대로는 곤란하다. 그것이 내가 아홉 달 전 아침 운동을 시작한 계기였다. 어차피 내겐 시간이 많았고 크게 서두르지 않은 것이 주효해던 것 같다. 요즘 내 체중은 30대 초반 정도 때로 돌아왔다. 물론 아직도 정상체중 범위에서 살짝 벗어나 있기는 하다. 그래도, 예전엔 입기만도 버겁던 패딩이 이젠 얇은 옷을 몇 겹이나 껴입고도 지퍼가 무사히 채워지는 걸 보며 나는 그래도 그가 떠나고 나 혼자 남은 지난 9개월 간 내가 무책임하게 나를 방치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약간의 대견함을 느낀다.


다만 한 가지, 그런 생각은 든다. 이왕 이렇게 될 거였으면 그가 떠나기 전에 아침에 두들겨 깨워서 같이 아침 운동이라도 하러 다닐 걸 그랬다고.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그의 몸에 정확히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건지 내가 정확히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랬더라면 최소한 그가 이렇게 내 곁을 훌쩍 떠나는 일을 몇 년은 늦출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는 늘 늦게 해서 후회(後悔)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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