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춘천 어느 빵집의 버터크림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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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그와 나는 빵을 좋아했다. 요즘 사람 치고 빵 싫어하는 사람이 잘 있기야 하겠느냐만 가히 빵돌이 빵순이라 불러도 쑥스럽지 않을 만큼 좋아했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우리의 즐거움 중 하나는 날을 잡아야만 갈 수 있는 멀리 떨어진 유명한 빵집에 가서 빵을 사고, 그 지역의 유명한 맛집에서 밥을 먹고, 몇 군데를 둘러보고 저녁이 되어 차가 밀리기 전에 후다닥 돌아오는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똑같이 빵을 좋아해도 그의 입맛과 나의 입맛은 좀 달랐다. 나는 빵집이라면 어디서나 하게 마련인, 그래서 한 입만 먹어봐도 대번 그 빵집의 내공을 알 수 있는 그런 빵들을 좋아했다. 단팥빵, 앙꼬빵, 슈크림빵 같은 그런 것들을. 반면에 그는 그 빵집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빵들, 피자빵이나 야채빵, 고로케 같은 빵들을 좋아했다. 우리가 골라서 매대로 가져오는 빵들은 그래서 극과 극으로 달랐고, 그래서 하나씩 먹으며 일일이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랬던 빵들 중에 춘천 어느 빵집의 버터크림빵이 있었다.


버터크림빵은 원래는 그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빵은 아니었다. 그는 버터크림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고 밋밋한 빵 사이에 버터크림만 잔뜩 샌드된 '재미없는' 빵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빵집의 버터크림빵은 그가 먹어본 전국의 모든 빵들 중 단일 품목으로는 단연 1위였고 그건 나도 그랬다. 이 빵은 그와 나의 의견이 조금의 차이도 없이 일치하는 매우 보기 드문 케이스였다. 우리가 다녀본 전국의 모든 빵집의 모든 빵들로 올스타를 짠다면 단연 메시의 포지션이라고, 그는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 말에 동감했다.



그가 떠나간 후 나는 더 이상 빵을 사지 않고 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집에 먹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간 내가 빵을 좋아했다고 생각하던 것의 상당 부분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뭔가를 먹으며 이 집의 슈크림은 어떻고 저 집의 양파빵은 어떻다고 이야기를 나누던 부분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탓이기도 하다. 그 즐거움을 잃어버린 채 빵을 먹기만 하는 것은 이제 내겐 배가 고플 때 라면 한 그릇 후다닥 끓여먹는 것과 별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저 집의 버터크림빵은 꽤나 오래, 자주 생각날 것 같다. 나 혼자 먹을 빵을 사러 춘천까지 갈 수는 없고 택배로 시키자니 최소 금액을 맞출 일이 꿈같아서 앞으로도 어지간해서 먹기는 힘들 것 같지만.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5월 말쯤 되는 그의 49제 상에는 저 빵을 꼭 하나쯤은 올려놔주고 싶다는 생각이라 냉동실에 다른 빵들을 죄다 얼려놓고 하나씩 꺼내 먹는 수고를 하더라도 한 번은 주문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 좋아하던 빵도 못 먹고, 도대체 거기선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브런치 어느 글에서도 봤지만 빵은 끊는 게 아니라 줄이는 거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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