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꽃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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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예전에는 꽃꽂이라는 것에 딱히 기술이라는 게 필요한가 하는 무지한 생각을 했다. 그냥 있는 꽃들을 잔가지 좀 쳐내고 길이를 적당히 잘라 예쁜 꽃병에 보기 좋게 꽂아놓으면 되는 게 아닌가 하고. 그러나 어설프게 한 달 정도 생화를 사다가 꽃병에 꽂아놓는 일을 해 보고 나니 세상만사 모두 그렇듯 세상엔 쉬운 일이 없고 많은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꽃을 꽂아놓는 문제에 있어 가장 신경 쓰이고 속상하는 점 중 하나는 꽂아 놓는 꽃들이 꽤나 빨리 시든다는 것이다. 꽃을 꽂을 때 잔잎과 가지를 다 미리 잘라내고, 매일 아침 일어나 꽃병에 물을 갈고, 매일 꽃대를 새로 조금씩 잘라주는 등의, 그가 봤다면 네가 그런 귀찮은 짓을 매일매일 하다니 이게 무슨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냐고 놀랄 일을 매일같이 하고 있는데도 꽃병에 꽂은 꽃들은 대개 일주일 남짓이면 시들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꽃을 새로 사서 꽂는 게 귀찮아서가 아니라, 그 아름답던 생명이 그렇게나 빨리 시드는 것이 옆에서 보기에 영 언짢고 속이 상하다. 그래서 틈틈이 꽃병에 꽂은 꽃이 오래 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검색해 보지만 별다른 뾰족한 방법은 찾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덜 핀, 봉오리가 많이 맺힌 꽃들로 골라서 사 오는 것 외에는.


그간 사 오던 꽃들은 꽃송이가 작고 많은 타입의 꽃들이었지만 얼마 전 사 온 리시안셔스는 꽃송이가 크고 몇 개 없어서 대충 봐도 구분이 가능했다. 사 왔을 당시 이미 피어있는 꽃송이가 네댓 개, 봉오리가 네댓 개 정도였다. 며칠이 지나는 사이 꼭 닫혀 있던 봉오리들이 조금 느슨해진다 싶기에 피는 걸 실시간으로 볼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을 아침에 물을 갈아주며 했다. 그리고 나름 번잡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점심때 무렵 돌아보니, 이미 꽃이 피기 시작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저를 보지 않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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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꽃 폈다. 그냥 그렇게 소리를 내어 말해 보았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걸 생각한다. 시간은 흐르고, 뭔가는 분명히 변하고 있다는 것을. 그와의 이별도 결국은 그렇게 일어난 일임을. 그리고 언젠가 나도 아무도 모르게 꽃이 피듯이, 그렇게 그의 곁으로 가게 될 것을.


그도 어디선가 이 새로 핀 리시안셔스를 보고 있기를 바란다. 생각보다는 잘 버티고 있는 나도. 가끔 생각지도 못한 것에서 생각지도 못한 것을 떠올리고 어린애처럼 울기도 하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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