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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an 20. 2023

본의 아닌 개성식 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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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는 2주에 한 번 꼴로는 주문을 하는데도 소소하게 떨어지는 물건은 끊이지 않고 생긴다. 이게 원래 이런 건지, 아니면 내가 아직도 물건이 사용되는 양의 어림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혹은 이젠 혼자 쓸 것들이라는 생각에 양이 좀 적은 것들로만 주문하고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현재로서는 답을 정확히 알 수가 없는 문제다.


설을 앞두고 분명 마트에서 장을 한 번 보았는데도 요거트니 두유니 하는 것들이 자잘하게 떨어진 데다 급작스레 베이컨이 약간 필요해져서, 뭐 오늘이 아니라면 설 인사를 하러 봉안당에 다녀오는 길에 또 마트에 들러서 이것저것 잔뜩 사 와야 할 참이라 그냥 품 던다 생각하고 오늘 다녀오자는 기분으로 집을 나선 것까지는 좋았다. 원래 사려고 하던 물건 몇 가지를 담고, 나온 김에 구경이나 하자는 기분으로 마트 안을 빙빙 돌기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필요하고 그러고 보니 저것도 필요했다. 그렇게 몇 가지를 더 담고 나니 순식간에 바구니가 그득하게 무거워졌다. 이거 어떻게 집까지 들고 가지. 여기까지 생각하니 머리가 슬그머니 아팠다.


이런 경우에 그가 쓰는 방법은 간단했다. 배송 가능금액인 5만 원을 맞춰서 몇 가지 물건을 더 산 후 그냥 집으로 배달을 시키고 빈 손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어차피 마트에서 사는 물건은 다 언제 써도 쓰는 것들이잖아. 유통기한 짧은 것만 안 사면 돼. 짐짓 심각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던 그 얼굴을 떠올리고 나는 피식 웃었다. 좋아. 그러란 말이지? 알았어. 뭐 그깟 5만 원, 돈이 없어서 문제지 살 거 없어서 못 채울까 봐. 결국 나는 카트를 가져와 바구니에 담았던 물건을 죄다 카트로 옮겨 담고는 본격적으로 충동구매를 시작했다. 역시나 그깟 5만 원, 돈이 없어서 문제지 물건으로 채우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눈대중으로 5만 원을 넘긴 후, 마지막으로 마트 안을 한 번 더 돌아보다가 나는 떡국떡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번 설에 떡국은 그냥 패스하고 만둣국이나 끓여 먹겠다고 그것 맞춰서 주문도 해놓은 주제에, 이제 와서 그래도 떡국 한 그릇은 먹어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다. 마트에서 파는 떡국떡은 기본 포장이 700그램이었고 대개 1킬로그램이었다. 저 태산 같은 떡국떡을 내가 뭘 해서 다 먹어 없앨 수 있을 건지, 그걸 생각하니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졌다. 집 앞 편의점에는 비싸서 그렇지 한 300그램짜리 소포장도 팔긴 하던데. 그냥 그걸 살까.


그러던 중에, 떡국떡과 떡볶이떡 사이에 끼어있는 조랭이떡이 눈에 들어왔다.


개성 지방에서는 설날 떡국에 조랭이떡을 넣어서 먹는다고 박완서 선생님의 글에서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글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도 나도 조랭이떡을 좋아했다. 국물에 넣고 푹 끓였을 때 몽글몽글해지는 그 식감을 좋아했고 떡볶이에 넣었을 때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쫀득거리는 그 씹는 맛도 좋아했다. 마침 포장도 500그램 정도면 역시나 좀 많지만 그래도 적당한 편이었다.


그래서 이번 설에, 나는 본의 아니게 '개성식 떡국'을 끓여 먹게 되었다.


설날 아침엔 역시나 봉안당에 다녀올 생각이니 가서 말해야겠다. 거기 얼마나 좋고 맛있는 음식이 많은지는 모르지만 와서 떡국이라도 한 그릇 먹고 가라고. 설날엔 떡국을 먹어야 인덕이 있다지 않느냐고. 물론 마흔아홉 평생 먹은 설날 떡국으로 남긴 게 나 하나뿐이라니 그것 좀 못 믿을 속설이긴 하지만,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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