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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an 22. 2023

새해에도 행복하세요

-284

작년 설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1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짐작할 수 있는 건 그날 메뉴가 떡국이었을 거라는 사실 하나뿐이다. 그는 아마 늘 하던 대로 지단을 부치고 파를 썰고 김가루와 통깨를 뿌리고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 가며 아주 호사스러운 떡국을 끓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나는 그 떡국을 함께 먹으면서 이제 나이 좀 안 먹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얘기들을 나누었을 것이다. 불과 서너 달 후에 어떤 이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로.


그리고 1년이 지나, 나는 혼자 설을 맞게 되었다.


이 글을 쓰고 나면 나는 간단한 준비를 해서 봉안당에 갈 예정이다. 원래 이번주는 내내 날씨가 추울 예정이라고 해서 내심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어제 확인해 본 일기 예보에 의하면 오늘 날씨는 겨울 치고는 꽤 풀린 날씨 비슷하게 기온이 올라와 있었고 대신 최저기온이 영하 10도가 넘게 떨어지는 날은 화요일과 수요일쯤으로 밀려나 있었다. 이번 달 들어 나는 열흘 사이 세 번이나 봉안당에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저 어설픈 녀석이 추운 날 나돌아 다니느라 감기라도 걸려서 혼자 앓기라도 할까 봐 그가 전전긍긍한 결과일 것이리라고 나는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있다. 지난여름, 그 종잡을 수 없던 더위와 폭우조차도 한 번 빼고는 죄다 비껴가게 막아준 그 솜씨가 어디 가기야 했겠느냐고. 거기 가서도 이러느라고 편히 쉬지도 못하고 있는 모양이라는 생각과 함께.


익히 브런치에 쓴 대로, 나는 오늘 먹으려고 사골국물에 만두에 조랭이떡까지를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냉동 곤드레밥도 한 팩 사다 놓았다. 이걸로 혼자만의 설상을 차릴 생각이다. 그리고 떡국 한 그릇은 따로 떠서 그의 책상 위 카네이션 꽃병 앞에 놓아두려고 한다. 당신이 끓인 것만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거나마 먹고 가라고. 사람 사는 세상 다 똑같다고 그곳에서도 인복은 필요할 테니까.


지난 9개월여의 시간 동안 이 보잘것없고 청승만 뚝뚝 덜어지는 브런치에 들러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온갖 삽질과 궁상에 응원을 보내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한다. 새해에도 부디 행복하시기를. 그리고 늘 당부드리는 바, 누가 됐든 바로 곁에 있는 그 사람이 밉더라도 너무 많이 미워하지는 말고 조금만 미워하시기를. 우리의 행복은 생각보다 연약해서, 어느 날 갑자기 너무나 쉽게 날아가 버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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