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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an 23. 2023

그래서, 남은 떡은요

-285

어제는 뜬금없이 새벽 네 시쯤에 잠이 깨 한 시간 넘게 뒤척였다. 그러다가 늦잠이 들어 장렬하게 늦잠을 잤다. 허둥지둥 아침에 할 일들을 마치고, 부랴부랴 봉안당에 다녀왔다. 날이 날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언제나처럼 그의 봉안당 앞에 작은 꽃을 한 묶음 놓고 작년 한 해 고생 많았고 올해도 매사 어설프고 할 줄 아는 거 없는 나를 잘 좀 보살펴 달라는 말을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미리 준비해 둔 대로 냉동 곤드레밥을 데우고 만두와 조랭이떡을 넣은 떡만둣국을 끓여 설날의 끼니를 때웠다. 나름 귀찮아서 혹은 정신이 없어서 생략하곤 하던 김가루도 어제는 모처럼 챙겨놨다가 뿌렸다. 다른 고명이 없으니 그거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김가루가 이렇게나 많이 남아있는 줄 몰랐는데, 이것도 식은 밥으로 볶음밥 할 때 조금씩 넣어 빨리 다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단이라도 하나 부쳐서 썰어서 올리면 보기도 좋고 맛도 더 있었겠지만 차마 그럴 정성까지는 내겐 없었다.


그렇게 실로 번갯불에 콩 볶아먹을 수준으로 한 끼를 차려먹고 치우고 나니 한 줌 남짓 쓰고 남은 조랭이떡을 과연 어떻게 보관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았다.


내가 떡국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 중에는 은근히 보관이 까다로워 사람을 신경 쓰이게 만든다는 점도 있다. 그가 살림을 맡기 전 내가 어설프게 부엌살림을 할 때 몇 번이나 떡국떡에 곰팡이가 피어 고스란히 내다 버린 기억이 있다. 그렇게 안 생겨서 은근히 까탈 부리는 식재료. 떡국떡에 대한 내 인식은 딱 그 정도였다. 그리고 그건 사촌쯤 되는 조랭이떡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이럴 때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남은 떡을 비닐팩에 꽁꽁 싼 후 냉동실로 보냈다. 그리고 쓸 일이 있으면 꺼내서 찬물에 30분 정도 담가 놓았다가 쓰곤 했다. 그러나 그렇게 쓰는 떡들은 대개 쩍쩍 갈라져서 별로 식감이 좋지 않았다. 뭐 좀 다른 방법이 없나 하는 생각에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그러나 나오는 말들은 대개 대동소이했다. 남은 떡국떡은 은근히 곰팡이가 잘 피기 때문에 보관에 유의해야 하며, 안에 들어있는 제습제는 절대 버리지 말고 꼭 같이 보관하라는 말과 일단 뜯은 후 일주일 정도 안에 다 먹을 예정이라면 냉장보관도 괜찮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냥 소분해서 냉동보관하는 게 답이라는 말들이 올라와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그가 하던 것이 정답이었다는 이야기다. 하기야 그 성격에 오죽 이것저것 찾아보고 그렇게 했겠나 싶은 생각에 나는 머쓱하게 웃었다.


남은 일주일 안에 그 조랭이떡을 다 먹을 일은 천지가 개벽해도 일어날 것 같지 않으니 그냥 일단은 냉동실로 보내기로 했다. 그 후엔? 하다 못해 떡볶이라도 해 먹든지 하지 뭐. 또 그렇게 태평하게 대충 생각해 버린다. 그라면 아마도 떡의 유통기한까지를 미리 꼼꼼하게 체크했다가 언제쯤 떡볶이를 해 먹을 것이고 떡볶이를 하려면 무엇 무엇을 더 사야 하는지까지를 다 체크해 놓았겠지만 아쉽게도 차마 그럴 정성까지는 내겐 없다. 남은 조랭이떡을 아무렇게나 냉장고 안에 처박아 두었다가 곰팡이 슬어서 내다 버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는 나의 최선을 다한 거라고, 그런 생떼를 써 본다.


도대체 이렇게 매사 어설픈 나만 남겨놓고 훌쩍 갈 생각이 어떻게 들었을까. 의외로 못된 사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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