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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an 24. 2023

나를 모르는 미용실

-286

나한테는 비녀가 두 개 정도 있다. 만 원 남짓 하는 것들로, 잘 쓰지도 않으면서 그냥 예뻐서 사놓은 것들이다. 그러던 와중에 얼마 전에 지인에게서 또 하나를 선물 받아 총 세 개가 되었다. 두 개까진 그렇다 쳐도 세 개씩이나 되다 보니 이걸 그냥 놔두는 것도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은 집에서 곧잘 머리 올리는 데 쓰고 있다. 그는 이런 올린 머리를 좋아했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아, 나 머리가 많이 길었나 보다. 비녀를 잘 쓰지 않게 되었던 건 머리 길이가 어중간해서 그걸로 비녀를 꽂으려면 온갖 무리를 다 해야 하기 때문에, 그냥 귀찮아서 슈슈 같은 걸로 대충 묶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게 이제는 제법 스무스하게 비녀를 쓸 수 있게 된 걸 보니 머리가 길긴 많이 긴 모양이다. 하기야 당연한 일이다. 지난봄 그 일이 있고 나서 한 번도 미용실에 가지 않았으니.


나는 외모 꾸미는 데 썩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미용실도 그리 자주 가진 않는 편이다. 오히려 미용실에 가는 건 그의 짧은 머리가 길어서 목덜미 언저리의 머리칼들이 뒤집어질 때거나 여름을 앞두고 바싹 짧게 자를 때였다. 그럴 때면 나도 덩달아 미용실에 가서 그가 머리를 자르는 동안 미용실에 비치된 잡지를 읽다가 나도 머리를 다듬고 돌아오곤 했다. 그러니 그가 있었더라면 못해도 두어 번 정도는 미용실에 갔을 시간을, 나는 그냥 머리가 알아서 자라도록 방치해 둔 상태로 지내고 있는 것이다.


거창한 파마나 염색은 아니더라도 조금 다듬으러라도 갈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못할 생각이라도 떠오른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와 같이 다니던 단골 미용실에 나 혼자 가게 되면 영문을 모르는 사장님은 아무런 나쁜 뜻 없이 왜 오늘은 혼자 왔느냐고 물을 것이다. 맨날 둘이 같이 오잖아. 신랑은 어디다 떼다 버리고 혼자 왔느냐고. 나는 그 말에, 얼굴이 일그러지지 않고 스무스하게 출장 갔어요 혹은 돈 벌러 갔어요 또는 주말부부 해요 하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을까. 이쯤에서 발등이 걸린다.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어차피 전문가의 기술이 필요한 파마나 염색을 하러 갈 것도 아니고 이렇게 질끈 묶거나 둘둘 틀어말고 있으면 잘 표도 나지 않으니, 그냥 다음에 가기로 한다.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그 다음에.


정 머리를 잘라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늘 가던 그 미용실 말고 다른 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모르는 곳. 그를 모르는 곳. 나에게 그의 안부를 묻지 않는 그런 곳으로. 예의 단골 미용실은 우리 동네 미용실 중에서도 가격이 싸고, 샴푸는 해달라고 할 때만 해 주고, 그래서 샴푸 값을 당연하다는 듯 받지 않고, 어떤 식으로 잘라달라고 대충만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장님이 계셔서 단골이었다. 어디 가서 또 그런 미용실을 찾을 수 있을까. 조금 막막하긴 하지만.


사는 게, 뭐가 이렇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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