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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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119가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내 머릿속은 꽃밭이었다. 메디컬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앰뷸런스에 사람을 싣고 병원으로 가며 한 편으로는 심폐소생술을 하고 한 편으로는 병원에 전화를 해 병실이 있느니 없느니를 입씨름하는 그런 것. 그러나 그런 것 또한 소위 골든타임이 지나지 않은 사람들이나 누려볼 수 있는 사치였다.


도착한 119 대원들은 그의 상태를 살폈다. 이미 사지에 강직이 있느니 운운하는 불길한 말이 오갔다. 대원 중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눈매가 유난히 선량한 한 여자 구조대원이 나를 방 밖으로 데리고 나가더니 눈을 맞추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남편분께서는 이미 심정지가 왔고 사지에 강직까지 있으신 걸 보니 이미 몇 시간 전부터 이런 상태셨던 것 같다고. 여기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 말을 듣고 나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다. 선생님 저희 오빠 잘못된 건가요? 라고.


구조대원은 즉답을 피했다. 저희가 사망선고를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의사 선생님이 오셔야 하고 어쩌고 하는 말로 즉답을 피한 그녀는 아무튼 이 상황에서 저희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고 조금 있으면 경찰 분들이 오실 거라고 했다. 경찰이라니. 그제야 난 이미 무슨 일인가가 벌어져 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저앉고 싶었지만 뻣뻣해진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그저 허리만 조금 수그릴 수 있었다.


잠시 후 순경들이 왔다. 그들은 내게 누가 봐도 정상적이지 않은 질문들을 했다. 어제 마지막으로 본 게 몇 시인지. 오늘 119에 신고하기 전 상황은 어떠했는지. 평소 지병이 있었는지. 먹고 있던 약이 있다면 뭐였는지. 질문을 마치고, 그들은 '현장'을 '보존'해야 한다며 나를 방에서 내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드라마에서나 보던 과학수사 조끼를 입고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왔다. 그들은 신발에 비닐 덧신을 끼우더니 서슴없이 집 안으로 들어왔다. 저희가 조사하는 과정이 불편할 수 있으니 안 보이는 쪽으로 가 계시라는 안내도 잊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우리의 보금자리에 낯선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침입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중 형사들이 옆에서 전화 통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응 여기 ○○동 변사 현장. 그 순간이었다. 변사. 어느 평화로운 금요일 아침에 벌어진 이 모든 일들은 미스터리 드라마에서나 듣던 그 한마디로 정의되었다. 나는 그제야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조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제 들어가도 되느냐는 말을 듣고,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잘라서 벗겨낸 옷가지들을 주워 한 옆으로 치우고, 이불 밖으로 비어져 나온 그의 차디차게 식은 발에 이불을 덮어 주었다. 이제야 마주한 그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찼다. 벌어진 입술은 검푸르게 변해 있었고 그 속으로 거품이 보였다. 떨리는 손으로 눈꺼풀을 뒤집어 보았다. 눈동자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의 눈은 이제 더 이상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나는 그의 차디차게 식은 몸을 부여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경찰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열아홉에 만나 마흔여섯이 되도록 사랑한 나의 사람은, 그런 식으로 내 곁을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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