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집에만 있었다. 코로나 탓도 있었고 그의 몸이 나빠지면서 차를 처분해 버린 탓도 컸다. 나다니는 것이 불편해지니 자연히 웬만해선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3월이 지나고 4월이 오도록, 우리 집에는 아직 봄이 올락 말락 하고 있었다.
경찰서에 가서 한 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고, 경황없이 떠내 보낸 얼굴이라도 보려고 그가 안치된 병원 영안실에 가보기로 했다. 안치실 혹은 영안실 등등의, 그의 부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말들을 내 입으로 뱉을 때마다 어깨로 소름이 올랐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내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나와 전화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미 망자였다. 내가 그들의 높이를 맞추어 주지 않으면 대화가 진행되지 않았다.
경찰서를 나와 방향도 모르고 한참을 하염없이 걸었다. 그제야 경황없이 주워 입고 나온 맨투맨이 좀 덥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모르게 팔을 걷었다.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사방은 이미 봄이었다. 날은 따뜻했고 봄꽃들은 담장마다 고개를 내밀고 환하게 피어 있었다. 올해 봄은 이미 오는 줄도 모르게 와서 한참 아름답게 만개하는 중이었다.
그 순간 울컥 울음이 터졌다.
집의 창문으로 내다보면 길 건너 대단지 아파트 단지 앞으로 줄줄이 심어진 벚꽃나무가 보인다. 그 나무들을 흘끔거리며 올해도 어차피 군항제도 윤중로도 틀렸으니 저기 벚꽃이 피거든 동네 김밥집에서 김밥이라도 한 줄 사 가지고 꽃이라도 보러 가자고, 그런 얘기를 불과 어제까지도 했었다. 벚꽃은 비만 한 번 잘못 맞아도 우르르 져버리게 마련이라 타이밍 잘 맞춰야 한다는 말도 함께.
그랬던 그는, 올해의 봄꽃 아래를 내 손을 잡고 한 번 걸어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서둘러 떠나갔다.
그와 나는 1995년 5월 7일에 처음 만났다. 얼마 전 4월 5일은 그의 양력 생일이었고, 심부전 때문인지 자주 갈증이 나는 그에게 물을 떠다 주며 생일이 식목일이고 내가 물을 줘가며 키우고 있으니 아무래도 나무인가 보다며 농담을 건넸다. 그러면 그는 웃으면서 내가 죽으면 꼭 그늘 커다란 나무가 돼서 너를 쉬게 하겠다고 맞받곤 했었다. 그리고 그가 떠난 날로부터 며칠 후인 4월 13일은 음력으로 쇠는 생일이었다. 그날 미역국을 끓여주려고, 레드벨벳 케이크라도 한 조각 사다 나누어 먹으려고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던 것들이 줄줄이 떠올랐다가 차례차례 부스러졌다.
도대체 왜 이런 날에, 왜 나를 버리고 떠나갔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필이면 이렇게 찬란한 봄날에. 떠나는 당신만 꽃길 걸어 떠나면 그뿐인지. 남아서 당신 없는 봄날을 지내는 나는 어떨 건지. 그런 거 한 번 생각해 보지도 않았느냐고.
도대체 뭐가 그렇게 급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