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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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그가 떠났다는 사실을 채 실감도 하지 못한 나에게 한 가지의 단계가 더 남아있었다. 그의 사인이 불명인 상태라 그 부분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부검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병원이 아닌 집에서 사망하는 경우 거의 대부분이 피해 갈 수 없는 절차라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그게 아내 분한테도 좋으실 겁니다. 가끔 동거하지 않는 가족들이 그 불명확한 사인을 꼬투리 잡아 뒤늦게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과 함께.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부검이라니. 그러니까 이미 잠든 사람을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온갖 데를 찢고 갈라 헤집겠다는 이야긴가.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가족들 중 그런 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백 살까지 사느니 마느니 하는 시대에 그 반도 못 살고 간 것도 억울하고 원통한데 그걸 또 들쑤시겠다는 거냐고, 안된다고 맞섰다. 그러나 경찰의 입장은 막무가내였다. 그가 떠나던 날 이미 검사에게 부검영장이 청구되었고, 영장이 나왔다는 거였다. 심지어 월요일 오후 2시로 부검 일정까지 잡혔다는 말을 듣고 나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담당 경찰은 몹시 무덤덤한 목소리로 부검 스케줄이 꼬이면 한 달 넘게 부검을 진행하지 못해 장례가 미뤄지는 경우도 있고 특히나 요즘은 코로나 관련 부검이 많이 밀려 있는데 빨리 일정이 잡혀 그나마 다행이라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을 덧붙였다.


전화를 끊고 부질없이 인터넷을 검색했다. 검시를 거쳐 범죄로 인한 것이 아닌 것이 명백한 변사에 한해 유족의 추모 감정에 반하는 부검을 거부할 수 있는 것으로 개정된 법안이 작년 하반기쯤 발의되었다는 뉴스 몇 가지를 읽었다. 법안이 발의되었다는 말은 아직 시행되지 않았다는 말이고, 그러니 그 무슨 수를 써도 나는 그의 부검을 막을 수 없었다. 행여나 차후에라도 자기들이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수사 기관의 태도 앞에 정작 사람 하나를 떠나보내고 가슴이 찢어지는 남겨진 사람들의 항변 따위는 아무 힘도 없었다.


유족은 부검을 참관할 수 있다는 안내를 들었다. 그러나 나는 부검을 참관하지 않았다.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떠난 사람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눈 돌리지 않고 지켜봐 주는 것이 남겨진 사람의 도리라는 것은 알았지만 도저히 볼 자신이 없었다. 부검을 참관하겠다고 신청하는 사람들은 더러 있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부검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한다고, 심지어 유족조차도 더는 지켜보지 못하고 중간에 나가버리기 일쑤라는 현직 부검의 분이 쓰신 글을 가지고 겨우 나의 비겁함과 겁많음에 대한 자기 합리화나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전화가 걸려왔다. 일정이 조정되어 부검이 조금 빨리 진행되리라는 이야기였다. 오후 2시로 잡혀 있던 부검이 아침 10시쯤으로 당겨졌고. 이런저런 절차를 마치고 장례식장에 돌아가면 바로 화장을 할 수 있으리라는 이야기였다. 화장을 하기 위해서는 검시 필증이 필요하니 관할 경찰서로 오라는 안내를 듣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기 전 한 가지를 물었다. 그의 사망 추정 시간이 대충이라도 나왔는지 하는 거였다. 그날 새벽 목이 말라 깨었다가 옆에 누운 사람이 잘 자는지를 한 번이라도 챙겨봤더라면. 그날 아침 일어나 복사용지 따위를 사러 나가는 대신 이불 한 번만 젖혀 봤더라면. 내 곁에서 27년을 살던 사람이 떠나는 마당에도, 나는 슬프게도 그런 것들에 천착하고 있었다. 발견이 늦어 정확한 시간을 추정하는 것은 힘들지만 그의 위장에서 전날 밤에 같이 먹은 소화되지 않은 도넛이 나왔고 그걸로 봐서 누운 지 얼마 안 돼 떠난 것 같다는 일차적인 소견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또 한참을 울었다. 이제야 그의 부재가 실감 나서. 아니, 그런 말을 듣고도 그의 부재가 실감 나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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