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꽃길

-6

by 문득

그가 떠나는 날이었다.


아침 여섯 시쯤 부검을 하러 서울로 간다고 했다. 사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망설였다. 따라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러나 그렇게 되면 내게 남은 그의 마지막 기억은 그나마 우리 집의 침대 위도 아닌 차가운 부검대 위가 될 터였다. 그것까지 견디고 살 자신이 없었다. 그가 출발할 시간쯤 해가 떠오는 집의 창문을 열고 그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넸다.


부검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일정이 조금 당겨졌고, 그나마 같이 부검하기로 된 분들 중 가장 빨리 부검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열한 시쯤 원래 안치되어 있던 병원으로 돌아왔다. 입관을 하고,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을 봤다. 염습하시는 분들이 입 가로 밀려 나와 있던 피거품을 전부 닦아내고 정갈하게 잘 정리해 놓으셔서 그냥 아주 깊은 잠에 든 사람 같아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생각보다 눈물은 그렇게까지 많이 나진 않았다.


관할 경찰서에 가서 검시 필증을 받고 화장장으로 출발했다. 그는 키는 그리 큰 편이 아니었지만 살집이 조금 있는 건장한 체격이었다. 그러나 그러던 사람도 화장과 수골 절차를 거치고 나니 조그만 유골함의 반 정도도 채 채우지 못했다. 그를 화장하러 간 곳에는 봄에 떠난 분들이 많이 잠들어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세월호의 희생자분들을 그곳에서 화장해 보내드렸다는 패널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었다. 그분들의 영전에 고개를 숙이고, 길지 않은 삶 내내 고생만 하다 떠난 가엾은 사람 하나가 오늘 그곳으로 가니 부디 따뜻하게 맞아주시기를 간절히 빌었다.



백세 시대 운운하는 말이 나오는 요즘 세상에, 그는 떠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였다. 이런 일에 대한 준비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모셔놓을 만한 봉안당도 이것저것 재고 따질 정신이 없어,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으로 다급하게 준비해서 그쪽으로 모셨다. 영정사진조차 준비하지 못했고 같이 안치할 유품 하나 가져오지 못해 일단 유골함만 소슬하게 모셨다.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조그만 꽃다발 하나를 사서 그 앞에 헌화했다. 이틀 후가 삼우제니까, 그때 뭐라도 갖다 놓기를 기약하고.


가까스로 거기까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곱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슬프게도 배가 고팠다.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그를 발견하던 금요일 아침부터 월요일 저녁까지, 물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서 이대로,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날은 배가 고팠다.


냉동실 안에는 한 유명한 설렁탕집에서 주문한 냉동 설렁탕이 두 팩 들어있었다. 그와 함께 먹으려고 미리 주문해 놓았던 것이었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꽁꽁 언 냉동 설렁탕 한 팩을 뜯어 냄비에 끓였다. 식탁도 아닌 내 책상에, 밥그릇 하나와 국그릇 하나를 가져다 놓았다. 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이 우습게도 나는 그 밥 한 그릇과 설렁탕 한 그릇을 깨끗이 다 비웠다.


오늘은 밥을 먹어도 될 것 같았다. 밥을 먹어도, 그가 서운해하지 않을 것 같았다. 너 오늘 큰 일 치르느라 고생했다고, 그러니 많이 먹으라고 말해 줄 것 같았다. 꿈속에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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