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삼우제 날은 그의 음력 생일이었다. 미역국을 끓여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아무런 준비도 해놓지 않은 상태였다. 집 앞 편의점에 가서 미역국 한 팩을 샀다. 그 편의점은 그와 나의 단골 가게였다. 그가 담배를 끊은 후 예전만큼 자주 들르지 못하자 어디 다른 단골 가게라도 생겼느냐고 묻던 점주님이 반가워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가 떠났다는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그냥 하지 않았다. 사 온 미역국을 끓여서 그릇에 담아 그의 책상에 놓아주었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날씨 복이 좋다는 것이 그의 소소한 자랑거리 중 하나였다. 여행이든 출장이든 먼 길을 가려고 날만 잡으면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날씨가 훼방을 놓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자신은 일평생 그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내가 여행 가려고 날만 잡으면 장마 중에도 날씨가 맑아진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옆에서 27년을 지켜본 바 그 말은 100 퍼센트까진 아니어도 한 80 퍼센트쯤은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의 그런 날씨 복은 그가 이 비루한 생을 놓고 멀리 떠나는 날까지도 계속되었다. 그가 떠나던 날도, 발인하던 날도 하늘은 쾌청했고 날씨는 따뜻하다 못해 조금 더운 나무랄 데 없는 멋진 봄날이었다. 그 사실은 다행스럽기도 했고 일견 서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날씨 복은 장례의 마무리 절차인 삼우제까지는 미치지 못한 모양이었다.
바로 전날 삼우제 때 봉안당에 안치할 것들을 준비하느라 여기저기 돌아다닐 때만 해도 날씨가 좋았는데, 삼우제 당일은 아침부터 궂은비가 내리고 날씨가 추웠다. 날씨가 추워져 봤자 봄 날씨가 봄 날씨지 생각하고 셔츠에 스웨터 하나를 겨우 껴입고 나간 나는 그날 하루 종일 때아닌 봄추위에 떨어야 했다. 전날 대비 기온이 10도가 떨어졌다고 일기예보에서 그렇게 말하는 걸 듣긴 했지만, 그날 느낀 그 서릿발 같은 추위는 단순한 10도의 기온차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어떤 것이 있었다.
챙겨간 유품들을 봉안당 안에 안치하고 어제 사온 꽃도 헌화했다. 운전하는 것을 좋아했고, 또 잘했던 그에게 집에 남아있던 차 스마트키를 가져다주었다. 심부전이 심해지고 몸 상태를 예측할 수 없게 되면서 그는 운전을 그만두었다. 그가 모는 차를 함께 타고 파주로, 군산으로, 심지어 부산까지 당일치기로 여행을 다니던 때가 분명히 있었는데. 이젠 거기서라도 아프지 않은 몸으로 그 좋아하던 차를 몰고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신나게 달려가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발인을 하던 날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상태로 온갖 일을 다 처리하느라 기진맥진해 있었고, 도저히 버스를 탈 자신이 없어 그냥 봉안당에서 집까지 택시를 탔었다. 그러나 이젠 그럴 수가 없었다. 길바닥에 몇만 원이나 되는 돈을 함부로 뿌리기에는 내 앞에 남은 생은 이미 많이 팍팍했으므로. 핸드폰을 뒤져 버스 노선을 찾았다. 바로 가는 버스는 없었고, 집 근처로 가는 광역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가서 갈아타야 했다. 본래도 방향치에다 20년 이상 그가 태워다 주는 차를 타고 다니는 호사만 누렸던 나는 버스 노선도의 방향을 잘못 읽고 건너편 정류장에 가서 버스를 기다렸고, 30분쯤 기다려 버스가 도착하고서야 내가 반대 방향 정류소에 와 있다는 걸 알았다. 다시 건너편으로 건너가 30분쯤을 기다려 버스를 타는 데는 성공했으나 버스는 발 디딜 틈도 없는 만원이었다. 손잡이도 시원치 않은 광역버스에, 좁아터진 통로 속에 가득 찬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며 한 시간을 달렸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창가는 김이 서려 밖이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 어느 만큼 왔다는 건지도 간간이 들리는 안내 방송이 아니면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힘들게 시달리며 집으로 돌아가도, 이제 불 꺼진 집에는 아무도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겠지. 그냥, 이런 게 앞으로 남은 나의 삶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눈가가 따끔거렸다.
집에 돌아와 문득 날짜를 세어 보았다. 그가 내 곁에 살다 간 시간은 정확히 9834일이었다. 그렇게나 오래 같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내 옆에 있었던 나날은 만 일이 채 되지 않았다. 그가 떠난 날로부터 9834일을 세어 보았다. 2049년 3월 10일이라는, 그런 게 존재하기나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먼 훗날의 날짜가 나왔다. 그때쯤이 되면, 나 없는 세상에서 고생 많이 했다고 그가 나를 데리러 와 주지 않을까.
나는 괜찮아. 괜찮아져 볼게. 그러니까 남은 내 걱정은 말고 편히 쉬라고, 식어버린 미역국 그릇을 치우며 그에게 속삭였다. 어디서든 듣고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