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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an 28. 2023

살은 굶어야 빠진다는데

-290

한동안 이러다가 나이 먹어 인생 최고로 날씬해지는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하게 만들던 내 체중은 2, 3개월째 치열한 제자리걸음 중이다. 가장 살이 많이 빠졌을 때를 기준으로 하면 되레 1킬로그램 정도 올라간 지점에서다. 오늘 좀 많이 움직였다 싶거나 뭔가에 정신이 팔려 군것질을 덜했다 싶은 날은 어김없이 살이 좀 빠져 있고 오후쯤 엄습하는 알 수 없는 출출함에 이것저것 집어먹은 날은 어김없이 되레 빠진 만큼이 쪄 있다. 전날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체중계 화면 속의 숫자가 제일 잘 알아보는 것 같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에 비해 나는 많이 느슨해졌고 내 몸은 그 상태에 많이 적응했기 때문이다. 운동을 거르거나 빼먹는 일은 없긴 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젠 운동의 강도에 많이 익숙해져 처음만큼 힘들지는 않다. 게다가 때아닌 한파가 찾아오면서 집 밖 출입이 거의 줄었다. 뭔가가 필요해서 집 앞 마트에 휑하니 다녀오는 등등의 일들은 뻔한 내 생활에서 적지 않은 운동량을 차지하는데 요즘은 어지간해서는 그런 일을 만들지 않고 있으니 어찌 보면 운동량은 날이 따뜻할 때에 비해 줄어든 셈이다.


그런 와중에 먹는 양은 확연히 작년 봄, 여름보다 늘었다. 한동안은 먹는 것 자체가 의미 없고 귀찮고 가끔은 죄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해서 온몸의 모든 기력을 짜내 점심 한 끼 정도를 겨우 차려먹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지냈다. 그러나 요즘은 그랬다가는 오후 네다섯 시쯤 감당이 안 될 정도의 공복감이 밀려들어 뭐라도 먹어야 한다. 어영부영 타이밍을 놓쳐버리면 이 때아닌 공복감은 밤이 되어 자리에 누울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운동량은 줄고 먹는 건 야금야금 늘었으니 체중계의 숫자가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그나마 그간 한 운동의 덕분으로 1킬로그램 내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맞지 않을까.


운동을 늘리는 것과 먹는 것을 줄이는 것. 둘 중 어느 편이 효과적인가 하면 내가 겪은 바로는 단연 먹는 것을 줄이는 것이다. 이것저것 많이 움직이거나 간만의 외출로 많이 걸은  다음 날의 체중계에는 의외로 큰 변화가 없지만 전날 뭔가를 적게 먹었다 싶으면 체중계 눈금에는 확연한 변화가 생긴다. 예전에 텔레비전에 나온 어떤 연예인이 '운동을 하면 튼튼해질 뿐이고 날씬해지려면 굶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걸 듣고 웃었던 기억이 나는데 의외로 진짜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굶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겠지만.


문득 지나간 작년 봄 생각을 한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가 갑작스레 떠난 후로 사흘 정도, 나는 편의점에서 대충 사 온 프로틴 음료 서너 병으로 하루를 살았고 그러고도 배가 고프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며 화를 낼 게 틀림없다.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의 내가 무색하게, 나는 그래도 살겠다고 이것저것 꾸역꾸역 주워 먹으면서, 그런 와중에도 더 내려가지 않는 체중계의 눈금에 골머리를 앓으면서 그렇게 살고 있다.


지난 4월 갑작스레 떠난 그를 따라가지 못한 시점에서 나의 이런 생활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내가 사는 곳은 눈과 비가 오고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아주 범속한 세상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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