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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an 30. 2023

로봇 청소기를 하나 사면 어떨까

-292

무선 청소기를 하나 사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그가 있던 시절부터 몇 번 입에 오르내리곤 했던 주제였다. 번번이 실제 사용해 보신 주변 지인들의 말로 그거 사실은 이것도 불편하고 저것도 불편하대 하는 식으로 흐지부지 끝나버리긴 했지만. 요즘 청소할 때 쓰는 진공청소기의 흡입력이 확연히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만약에 이걸 바꿔야 된다면 그때는 무선을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한다. 그러지 말고 이 참에 로봇 청소기를 하나 사면 어떨까.


요즘에 황사며 미세먼지가 워낙 기승이니 저런 게 하나 집안을 꾸역꾸역 돌아다니고 있으면 꽤 효과는 있지 않을까 하고 그는 말한 적이 있었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온, 청소 중에 환기를 하려고 현관문을 좀 열어놓은 틈에 밖으로 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출'한 로봇 청소기의 이야기는 한동안 그와 나의 웃음 버튼이었다. 로봇 청소기 위에 올라타 무슨 자가용 승용차라도 탄 듯 드라이브를 즐기는 남의 집 고양이의 영상 클립 같은 걸 보며 같이 웃기도 했었다.


그러나 내가 요즘 로봇 청소기에 혹하고 있는 건 사실 그런 이유에서는 아니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집 안이 너무나 적막하게 느껴져서다. 그래도 이 텅 빈 듯한 집 안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둥글납작한 물체라도 하나 있으면 좀 덜 썰렁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에서. 그게 그냥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나름의 청소까지 한다면 더욱 좋은 일이겠고. 센서가 인식하지 못하는 곳은 청소하지 않는다느니 구석진 틈새는 그대로라느니 하는 말들이 더러 있는 것 같지만 그거야 내가 치우면 될 일이고. 로봇 청소기를 하나 들였다고 내가 해야 할 청소가 아예 없어지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내가 지금 가전제품을 살까 말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건지 반려동물을 하나 들일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피식 웃는다. 하긴 그런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나이 드신 부모님 편하시라고 로봇 청소기를 하나 사드렸는데, 더 좋은 제품이 나와 바꿔드리려고 해도 그 로봇 청소기에 정이 들어버린 부모님이 한사코 반대하신다는. 심지어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이름까지 붙여주는 경우도 있다던가. 그런데 나도 아마 그럴 것 같다. 도대체 뭘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뭔가를 치우는 그 물체에 필요 이상의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이, 지금의 내게 가능할까. 아마 별로 그렇지 않을 것 같다. 혼자만이 살아 숨 쉬는 집안은 너무나 적막하고, 그렇다고 정말로 살아있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데려다 키우기에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내가 생각해 낸 일종의 임시방편 혹은 대리만족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만하면 꽤 잘 버텨나가고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마도 외로운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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