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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Jan 31. 2023

아직 아니야

-293

그러니까 대략 5년 혹은 6년쯤 전이었던 모양이다. 내 인생이 바닥 중에서도 바닥을 치던 때가. 불과 300여 일 전에 사랑하던 남편을 떠나보낸 입장에서 지금이 그때보다 더 힘들다는 말을 하는 것이 도리겠지만 그런 나조차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만큼 그때의 내 생활은 엉망진창이었다. 그때의 나는 금요일 오후가 되면 잠깐 얼굴이 피었다가 일요일 아침부터 다시 얼굴이 굳어지곤 했고 일요일 밤 자리에 누워서는 이 밤이 영영 새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오래된 로맨스 영화에서처럼 영원히 다음날로 넘어가지 못하는 하루라던지 하는 식으로. 그때의 기억이 남아 나는 지금도 월요일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월요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게 과연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리고 간만에, 어제는 그런 끔찍한 월요일의 재림이었다.


하루종일 멘탈이 박살난 채로 나는 정신을 놓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하루에 한 끼 고작 차려먹는 밥을 두 시 가까이가 되도록 먹지 않고 있었다. 사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이젠 밥 먹으라고 옆에서 잔소리할 사람조차 없다는 사실이 그래도 내 등을 떼밀었다. 남아있는 식은 밥에 다진 고기와 양파를 대충 볶아 볶음밥을 만들어서 허겁지겁 먹고 치웠다. 맛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제는 분명히 날씨가 꽤나 많이 풀려서 오후엔 영상으로까지 올라간 모양이던데 집안에 들어앉은 나는 걷잡을 수 없이 추워서 맨투맨에 가디건을 껴입고 집 밖에 나갈 때 입는 두꺼운 기모바지에 무릎담요까지 칭칭 감고도 떨었다. 차디차게 식은 손발에는 좀체 온기가 돌아오지 않았다. 위기를 감지한 내 정신이 어떻게든 브레이크를 걸려고 노력하는 느낌이었지만 한 번 가속이 붙기 시작한 나쁜 생각들은 자꾸만 사람을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렇게 열 시를 조금 넘기고, 나는 그냥 다 집어치우고 눕기로 했다. 그것만이 내가 택할 수 있는 도피처여서.


그리고 나는 그가 떠난 후 아주 오랜만에, 이대로 잠들어서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꼴 저 꼴 안 보고 혼자만 편하고 좋은 데 가 있으니 좋으냐고, 나는 불 꺼진 방 안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을 그의 사진 액자를 향해 물었다. 그러지 말고 나도 좀 데려가. 혼자만 좋은 데 가서 편하게 살지 말고. 무슨 남자가 그렇게 치사해. 뭐 그런 말들과 함께.


그러나 그는 결국 나를 데리러 오지 않았고, 나는 멀쩡하게 눈을 뜬 채 또 다른 오늘 아침을 맞고 있다.


생각해 보면 지나간 10개월은 내 인생 답지 않게 지나치게 평온했다. 내 인생은 언제나 크고 작은 풍랑의 연속이었고 내가 평생 이러고야 살겠냐는 말 한마디에 기대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는 많은 순간들이 끝도 없이 찾아왔었다. 그리고 지난 10개월간 내 인생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쥐 죽은 듯 조용했었다. 아마도 저 하늘 위의 누군가가 여기서 그런 것까지 했다간 저 녀석 정말로 험한 짓이라도 할 것 같으니 좀 자제하라고 명령이라도 내린 것처럼. 그리고 그 유예기간이 슬슬 끝나가는 모양이다.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이고, 너는 또 살아야지? 어제 나는 누군가의 그런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의 봉안당에 갈 때마다 마지막 인사 비슷하게 하는 말이 있다. 평생 나만 챙기다 간 사람에게 또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 거기서도 나 좀 잘 살펴주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거든 데리러 오라고. 버선발로 따라나서겠다고. 내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는 그였으니까 아마 그 부탁도 웬만하면 들어줄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데리러 오지 않은 걸 보면 이 정도 일은 내가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치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혼자만 이 꼴 저 꼴 안 보고 좋은 데 가서 편하게 사니까 좋으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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