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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Feb 01. 2023

마요네즈만 퍼먹으면서 살면

-294

부부는 닮는다고 한다. 그와 나도 그랬다. 뻔한 우리 동네 안에서야 별로 그런 말이 없었지만 조금만 낯선 곳으로 가면 부부냐는 소리보다는 남매냐는 소리를 더 많이 듣고 다녔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20년 이상씩을 자라서 부부가 되는 것일 텐데 참 신기하지 않냐는 말에, 그는 아마 같이 살다 보면 같은 일에 웃고 같은 일에 화내고 같은 일에 찡그리면서 얼굴 근육의 구조라든가 형태 같은 게 비슷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제법 그럴듯한 소리를 했다. 아, 정말 듣고 보니 그렇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아무리 닮아가도 사람이 완전히 같아질 수는 없는 법이다.


그와 나 사이에는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식재료가 몇 가지 있었다. 그중 첫 손에 꼽히는 것이 계란이었고 두 번째 정도가 마요네즈였다. 아니, 마요네즈라는 것 또한 계란 흰자에 기름과 식초를 넣고 휘저어서 만드는 것이니까 결국 계란의 범주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는 마요네즈를 몹시 싫어했다. 그래서 감자샐러드 같은 마요네즈가 꼭 들어가야만 하는 음식에만 그나마도 최소한을 넣었다. 그래서 한 세트 정도로 취급되는 케첩을 두 번쯤 새로 사는 동안 마요네즈는 한 병을 채 다 못 쓴 채로 고스란히 남아있는 일이 잦았다.


반면에 나는 마요네즈를 은근히 좋아하는 편이다. 그가 가장 기겁을 했던 내 식습관 중의 하나는 맨 식빵에다 마요네즈를 쓱쓱 발라 우적우적 베어 먹는 점이었다. 그 느끼한 걸 무슨 맛에 먹느냐고 그는 기겁을 했고 나는 이거 꽤 생각보다 고소하고 먹을만하다며 한 입만 먹어보라고 그의 눈앞에 마요네즈를 바른 식빵을 들이밀곤 했었다. 그래서 같이 읽던 어느 만화책에 등장하는 한 캐릭터가 무슨 음식에든 마요네드를 한 병씩 부어서 먹는 걸 보고는 내가 보기엔 너도 이런 기미가 있다며 그는 늘 투덜거리곤 했다.


며칠 전 한 마트 주문에서, 무슨 사은품이라면서 주문하지도 않은 매운맛 라면이 멀티팩으로 두 봉지나 왔다. 이것 참, 주셔서 감사한 일이지만 이건 또 어떻게 끓여 먹어야 하나 인터넷을 잠깐 뒤지다가 나는 무려 '러시아식 라면'이라는 괴이한 레시피를 발견했다. 매운 라면에 소시지나 햄을 좀 넣고 끓인 후에 마지막 순간에 마요네즈를 한 바퀴 빙 둘러서 휘휘 저어 섞는다는 간단한 레시피였다. 이거 맛있을까. 레시피를 올린 사람의 말로는 '생각보다 괜찮으며 별미로 먹을만한 맛'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있었다면 절대로 시도하지 않을 레시피이기도 했다. 나는 어쨌든 그에 비해 마요네즈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편이므로 한 번 시도나 해 보기로 했다.


결론은 레시피를 올린 사람의 말대로였다. 라면의 맵고 톡 쏘는 맛이 많이 부드러워지고 고소해져서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해졌고 같이 넣은 햄과도 꽤나 잘 어울리는 맛이 되었다. 야, 이거 괜찮네. 제법 맛있다. 면발을 다 건져먹고 남은 국물을 떠먹으며 나는 그의 액자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오빠였다면, 아마 한 번 딱 끓여 먹어보고 다시는 안 끓여 먹겠지. 마요네즈 싫어하니까.


매 끼니 마요네즈만 퍼먹으면서 살면 한 번쯤은 꿈속에 다녀가줄까. 너 도대체 그런 것만 먹고 어떻게 사느냐는 말이라도 하러. 뿌옇게 흐려진 라면 국물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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