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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Feb 02. 2023

떡볶이엔 삶은 계란을

-295

아직 부산에 살던, 그도 나도 학생일 때의 일이다.


그의 집 근처 골목에는 떡볶이며 오뎅, 튀김 같은 것들을 팔던 노점이 있었다. 그런 노점은 그 무렵에도 이미 서서히 자취를 감추어가던 중이었고 그 노점은 그러니까 일종의 마지막 흔적 비슷한 것이었다. 그의 집 근처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이면 우리는 꼭 그 노점에 들러 떡볶이를 사 먹고 흥건하게 남은 양념에 부스러뜨린 삶은 계란을 곁들여 먹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하곤 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는 계란을 조리법 불문하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떡볶이 양념(특히 그 노점의)을 얹어서 먹는 삶은 달걀은 세상의 그 수많은 종류의 요리된 달걀들 중 거의 유일하게 그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가끔 떡볶이를 해 먹을 때면 그는 잊지 않고 그 노점의 떡볶이와, 붉다 못해 검붉은 색깔이 나서 보기만 해도 콧등에 땀이 오를 정도였지만 막상 먹어보면 또 그렇게까지 맵진 않던 그 양념과, 그 양념에 비벼 먹던 삶은 달걀 이야기를 하곤 했다. 아직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 맛은 안 난다는 말과 함께. 그거야 당연하지. 그 노점이야 거기서 장사를 몇 년이나 했잖아. 오빠가 아무리 음식을 잘해도 아마추어인데 그게 대번 그렇게 흉내가 내 지면 내 밥이나 해 줄 게 아니라 나가서 식당을 차려야지. 우리의 대화는 항상 그런 식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그리고 그가 떠나간 후 나는 한 번도 떡볶이를 해 먹지 않았다.


이런 식의 금기 아닌 금기를 깨는 순간은 언제나 나의 '결심'이 아닌 그래야만 할 '필요'에서 온다. 설날이라고, 그래도 떡국은 먹어야지 싶어서 한 봉지 사놓은 그 조랭이떡 말이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조랭이떡을 먹어 없앨 방법으로 떡볶이 이상 가는 것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떡볶이에 넣으려고 잘 사지도 않던 오뎅과 비엔나 소시지까지도 조금 사놓은 참이다. 또 언제나 해 먹게 될지 모르니까, 해 먹으려면 그래도 남들 넣는 건 넣고 해 먹어야지 하는 마음에.


그리고 오늘 아침 정리를 마치고 이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기 전에, 나는 계란을 하나 삶았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지만 아무래도 그 노점 같은 맛은 안 난다고 그는 늘 말했다. 그리고 내가 하는 떡볶이는 아마도 그의 떡볶이보다 훨씬 더 그 노점의 맛에서 멀어져 있을 것이다. 떡볶이를 할 때는 이렇게 하면 텁텁하고, 저렇게 하면 맛이 깔끔하고 운운하는 말을 그는 몇 번이나 한 적이 있었지만 당시의 나는 정말 건성으로 그 이야기들을 들어 넘겼다. 그땐 그가 평생 내 옆에서 나 먹으라고 떡볶이를 해 줄 줄로만 알았으니까. 이렇게나 빨리, 내 손으로 떡볶이를 해 먹어야 할 날이 올 줄은 몰랐으니까.


고작 삶은 계란 하나지만, 그걸 다 먹을 자신은 없다. 그래서 반으로 쪼개서, 떡볶이 양념을 좀 얹어서 그의 책상에 가져다 놓으려고 한다. 맛이나 보라고. 당신이 한 것만큼 맛있지는 않겠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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