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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Feb 03. 2023

양 대중은 생각보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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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하는 사람'으로서 그에게는 약간의 문제가 하나 있었다. 양 대중을 잘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가 만드는 음식은 언제나 그와 내가 양을 넘겨 과식할 만큼 먹고도 좀 남았다. 그래서 늘 아 마지막에 무엇 무엇을 조금 더 넣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식의 멘트가 따라오곤 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해놓고도 그는 또 다음에 뭔가를 만들 때면 늘 그런 식으로 배불리 먹고도 남을 만큼의 음식을 했다. 그는 늘 음식이 모자라서 빈정이 상하는 것보다는 남아서 버리는 게 낫다는 쪽이었고, 그의 그런 성격 때문에 그는 늘 양 대중에 실패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좀 다를 줄로만 생각했다.


어제 아침 브런치에 대고 공언한 대로 점심 때는 떡볶이를 만들었다. 얼려놓았던 조랭이떡 한 줌에 양파 반 개, 약간을 썰어놓고 오뎅에 비엔나소시지까지 쫑쫑 썰어서 준비를 해 놓았다. 고추장에 고춧가루, 설탕, 간장이 들어간다는 양념장에는 카레가루도 한 숟갈 넣었고 어딘가에 쓰고 조금 남아있던 라면 스프도 넣어서 잘 섞었다. 이렇게만 하면 뭐 대충, 떡볶이 비슷한 거라도 만들 수 있을 참이었다.


아 맞다. 라면사리 하나 넣어야지.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라면사리를 넣으려고 생각하니 냉동실에 처박힌 냉동만두 생각이 났다. 오늘 해 먹으면 또 언제 해먹을지도 모르는 떡볶이인데 가급적 이것저것 다 넣고 맛있게 먹자. 그런 생각에 만두를 꺼내 살짝 구웠다. 그래서 떡에, 오뎅에, 비엔나소시지에, 라면 사리에, 구운 만두에, 삶은 계란까지 들어간 내 수준으로서는 상당한 초 호화판 떡볶이가 완성되었다.


문제는, 이게 혼자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다는 점이었다.


라면 면발이 국물을 빨아 들어 불어 가는 속도는 생각보다 무척 빨랐다. 내가 떡볶이를 먹는 속도보다 면발이 불어나는 속도가 더 빠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어묵 또한 그 정도는 아니나마 실시간으로 퉁퉁 불어서 부피가 늘어나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처음엔 아 뭐 이만하면 첫 솜씨치곤 나쁘잖네 하는 정도의 감상이었던 떡볶이는 가면 갈수록 불어나는 면사리 및 오뎅과의 사투로 변해갔다. 결국 아주 깨끗하게 다 먹진 못하고, 나는 세 젓가락쯤 되어 보이는 면사리와 오뎅 몇 개를 남겼다. 뭐 나도 별 수 없네. 떡볶이가 벌겋게 남아있는 그릇을 쳐다보다가 나는 그렇게 한 소리 했다. 맨날 양 대중 못한다고 사람 놀리더니만.


물론 양 대중을 못한다는 결과가 같아도 그 이유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는 아마도, 혹시나 내가 더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게 될까 봐 번번이 양 대중에 실패한 것이었겠지만 나는 그냥 뭘 얼마만큼 해야 일인분인지에 대한 감이 없는 것이니까. 내가 양 대중을 못하는 건 그냥 내 앞가림을 못하는 증상의 일부분 정도일 것이다. 만들어준 음식을 내가 잘 먹는 게 좋아서 일부러 넉넉하게 만들던 그와는 다르게.


이젠 그런 앞가림마저도 모두가 나의 몫이다. 나는 그런 시간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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