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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Feb 04. 2023

결국, 슬램덩크 1

-297

슬램덩크가 연재 끝난 지 20년도 훨씬 넘긴 지금 극장에 개봉했다는 사실은 진작에 알았다. 저걸 굳이 보러 가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본래도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의자에 움쭉달싹 못하고 앉은 채 두세 시간 동안 스크린이 보여주는 스토리에 몰입할 것을 강요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극장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군것질거리 우물우물 먹으면서 그와 적당하게 이야기도 나누면서, 꼭 봐야 할 일이 있으면 핸드폰 화면도 더러더러 들여다봐도 '관크'가 되지 않는 집 쪽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그래서 슬램덩크 또한 vod나 풀리면 한 번쯤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제 아침 불쑥 읽은, 슬램덩크의 흥행을 다룬 어떤 기사의 제목이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지만 않았어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 그랬다. 이 만화가 한참 연재되던 그 시기에 나는 정말로 아무 걱정도 없었다. 아니, 물론 있기는 있었을 것이지만 지금의 그것에는 비교할 수 없는 덧없고 사치스러운, 예쁘고 황홀한 걱정거리들만 장식처럼 매달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학교 앞 만화방에서 빌린 서른 권도 넘는 슬램덩크 전질을 그의 보스턴백 속에 꾸역꾸역 집어넣고 학교로 올라가 텅 빈 강의실에서 하루 종일 읽으며 웃다가 킥킥거리다가 탄성을 지르다가를 반복했던 여름방학의 어느 하루를. 그날은 모르긴 해도 우리가 같이 행복했던 날들 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들 만큼 평온하고 즐거웠던 날이었다. 지나간 날은 어느 날이고 이젠 되돌아올 수 없다지만, 이젠 더더욱 멀리 가 버린 그날들이 불쑥 가슴에 사무쳤다.


그래서, 결심했다. 보러 가기로.


두 자리를 예약했다. 괜히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벌써 관람 인원이 200만 명이 넘었다던데 내가 예약한 회차에는 그렇게까지 사람이 많지 않아 두 자리 정도를 연석으로 예약하는 건 무리가 없었다. 이게 도대체 얼마 만에 가는 극장인지를 어림해 보았지만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와 함께 극장에 가면 언제나 팝콘도 사고 나초도 사고 핫도그도 사서 최소한 영화 중반까지는 그것들을 먹으면서 영화를 봤다. 하지만 어제는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아 그냥 자몽 에이드 한 잔만을 샀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얼마 전 알게 된 충격이라면 충격적인 사실은 연재하던 당시 기준 그와 강백호가 동갑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북산고 주전 5인방은 전원 내게는 오빠들인 셈이다. 그러니까, 어딘가에 있을 그 강백호도 서태웅도 지금의 그만큼 나이가 먹었을 거라는 뜻이겠다. 이거야말로 지나간 세월을 정타로 맞는 느낌이어서 나는 잠시 씁쓸해졌다.   


그렇게 나는 이 때아닌 시간 여행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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