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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Feb 05. 2023

결국, 슬램덩크 2

-298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의 주의를 요합니다)





어차피 원작을 다 아니까, 굳이 뭘 알고 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진 않아 뭔가를 따로 찾아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극장판의 주인공이 강백호가 아닌 송태섭인 것도, 그의 과거사가 스토리의 중요한 키워드인 것도 몰랐다. 그래서 처음엔 조금 당황했다. 나는 그 녀석들이 함께 뒤엉켜 땀 흘리고 좌절하고 뭔가에 부딪히면서도 꿋꿋이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러 왔을 뿐인데, 느닷없이 마주친 아빠의 죽음과 슬픔에 잠긴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를 이젠 우리가 지켜줘야 한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 그건 지금 현재 나의 모습과도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더욱 그랬다.

그리고 이 엇갈려버린 모자의 이야기는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고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 중에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책이 있다. 8개월 상간에 남편과 아들을 차례로 잃고 슬픔과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쓰신 글들을 모은 책이다. 선생님이 그 일을 겪으신 것이 1988년이었던 모양이다. 올림픽이 열리고 있을 무렵이다. 나는 이렇게 슬픈데. 이렇게 슬퍼서 숨조차 쉴 수가 없는데. 세상은 올림픽이네 뭐네 흥청망청 즐거운 것이 이해되지도 않고 납득할 수도 없고 종내엔 죽도록 미웠다고. 그래서 이 세상 따윈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많은 순간이 있었다고 글은 담담한 말투로 말하고 있다. 작중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세상 아무도 웃지 못하게 하고 싶다는, 그런 마음. 감히 그게 어떤 마음인지 너무나 알 것 같아서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있다.


태섭의 가족에게도 비슷한 비극이 일어난다. 아마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인 모양인데 큰아들마저 친구들과 낚시를 하러 갔다가 선박사고로 실종된다. 이 일로 엄마와 태섭은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한다. 아마 엄마로서는 죽은 큰아들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많은(심지어 우연히도 두 형제는 생일마저 같았다고 나온다), 그러나 아무래도 큰아들만은 못한(죽은 사람과 겨뤄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태섭의 존재 자체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태섭에게 형의 배번이었던 7번을 달지 말라고 하기도 하고 형의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기도 하고, 형의 티셔츠를 입고 있는 태섭에게서 강제로 티셔츠를 벗겨버리기도 한다. 그 심정이 너무나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아서, 그러나 그 와중에 상처받는 어린 태섭 또한 눈에 밟혀서 나는 아무도 반응하지 않는 그 장면에서 혼자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영화의 거의 마지막 장면.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새벽 일찍 집을 나서면서, 태섭은 엄마에게 편지 한 장을 남겨놓는다. 학교에서도 소문난 불량소년에 문제아인 태섭의 편지는, 그러나 너무나 정갈하고 심지어 정중하기까지 해서 보는 사람의 억장을 무너지게 했다. 제가 농구하는 걸 싫어하셨지만 그만두라고는 하지 않아 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차마 편지에 적지는 못했지만 쓰다가 구겨버린 문장이 하나 더 있다. 살아있어서 죄송하다고. 살아있는 게 형이 아니라 저여서 죄송하다고. 이쯤에서는 정말 견딜 수가 없어졌다. 고개를 처박고 눈가를 훔치면서, 나는 새삼 내게 지나간 봄의 일로 상처 줄 다른 사람-특히 아이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라도 저랬을 것 같아서. 저러지 않았을 자신이 없어서. 그런데 그러면 안 되는 거라서.


앞 글에서 북산고 주전 5인방은 전원 내게는 오빠들이라고 했다. 그러나 영화가 개봉한 것은 2023년이니, 그에 맞게 그네들의 나이도 다시 조정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올해 열일곱, 8년 전에 죽은 큰 아들의 나이로 따져도 스무 살짜리 아들이 있는 그 집 어머니의 나이는 나와 비슷하거나, 기껏해야 나보다 한두 살 정도 많은 정도일 것이다. 옆집에 산다면 마트를 같이 가거나 무료한 오전 시간 찾아가 커피라도 한 잔 나누어마실 수 있는 그런 사이일 것이다. 내가 이만큼 나이를 먹었구나 하는 실감을 여기서도 하게 된다.


그녀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태섭 엄마 애들한테 그러면 안 돼요,라고. 그래봤자 죽은 사람이 살아오는 것도 아니고, 그거 나중에 다 후회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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