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듣기 싫은 꽃노래 매일 부르기

-36

by 문득

별로 실감은 나지 않지만 시간은 가고 있다. 한낮에 나가 돌아다니다 보면 콧잔등으로 제법 땀이 배어오르기도 하고, 코와 입을 가린 마스크가 슬슬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걸 보니 그런 모양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나의 상실감과 슬픔에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그가 떠난 지 이제 '겨우'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그러나 그건 내게나 그럴 뿐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벌써' 한 달이나 지났을 것이고, 그러니 아직도 일상을 회복하지 못한 나는 그들에게는 점차 '함부로 말 걸기 어려운' '아무 생각 없이 말을 걸었다가는 시한폭탄처럼 펑 하고 터질 것 같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대놓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나 혼자서 그런 걸 느낄 뿐이다. 그리고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어디까지나 한 다리 건너 남의 일일 뿐이니까.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식으로, 내가 알지 못할 아픔을 겪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지극히 표피적인 위로만을 건넸던 순간이 있으니까.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는 말이 있다. 심지어 사람이 떠나고 슬퍼하는 이야기 같은 걸 내내 들어 즐거울 사람 같은 게 있을 리가 없다.


그와 나의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만나서 어떻게 사랑하기 시작했는지, 그와 내가 함께한 27년의 세월 중에 어떤 기가 막힌 일들이 있었는지, 그가 나에게 내가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하는 것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아는 타인은 단 한 명도 없다. 내 주변에서 무너지는 나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그 기나긴 이야기의 몇몇 조각들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상실감을 온전하게 공감해 줄 타인은 원래부터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의 내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운지를 그 누구에게서도 온전히 이해받을 수 없다는 사실은 가끔 그가 사라졌다는 사실 그 자체만큼이나 내게는 서럽고 아프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브런치에 와서 글을 쓴다. 글을 쓰면서 어김없이 운다. 용케 글을 쓰는 내내 울지 않았더라도 발행 버튼을 누르고 난 후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그의 사진 액자와 눈이 마주친 후까지도 울지 않은 날은 내 기억엔 하루도 없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해야 할 일들을 대충 마치면 어김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이 청승맞은 글타래를 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아직도 작가의 서랍 안에는 대충 끄적여 던져놓은 이야기들이 열 개 남짓 남아 있고 어느 날은 하루에만도 서너 개씩 쓰고 싶은 것들이 떠오른다. 그러니 아마 한동안은 나는 계속 이렇게 살 것 같다.

가끔 그런 생각도 든다. 좋은 일도 아니고, 같이 살던 사람이 젊은 나이에 어느 날 갑자기 횡사하고 혼자 남아 청승 떠는 이런 이야기를 매일 아침마다 써대는 것에 대해, 이 글들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어떤 기분일까 하고. 내가 지금 일면식도 없는 분들에게 나의 슬픔을, 나의 아픔을 강요하고 있진 않은가 하고. 그러나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 게 아니면서도, 나는 쓴다. 그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를 생각하고, 그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고, 글을 쓰면서 울고, 울다가 자책하고, 자책하다가 억지로 정신을 차리는 배터박스에 들어서기 전 타자의 루틴 같은 쳇바퀴를 매일 돌면서도, 그것만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제 그는 내 글 속에서가 아니면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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