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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의무감으로 하루에 한 번씩 전화를 주시는 지인이 있다. 출근하면서, 퇴근하면서, 운동하러 가면서, 잠시 나왔다가 짬이 좀 나서 등등의 말을 늘 서두에 붙이는 그분은, 사실은 그냥 나를 걱정하고 계시는 중일 테다. 별다른 용건도 없이 하루에 한 번씩 전화를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귀찮고 힘든 일인지 일상에 치여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우리를 세상에 존재하게 해 준 분들에게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요즘 그런 정도의 호의를 그분에게서 받고 있는 중인 것이다.
며칠 전 그분은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잠깐 말을 끊더니 그래도 이제는 목소리가 많이 밝아졌구나, 하고 말씀하셨다. 떠난 사람은 안됐고 안타깝지만 산 사람은 또 살아야지 어떡하겠느냐고. 나는 그날 그분이 아주 오랫동안 그 말을 참고 있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진심으로 그 말에 대답할 자신이 없어 대충 맞장구를 치고 전화를 끊었다.
난 정말로 괜찮아진 것일까. 솔직히 모르겠다.
그가 떠나고 한동안은 감정의 변화가 없이 내내 슬펐다. 마치 장마철 호우 경보가 내린 중에 오는 비가 국지성 호우냐 아니냐 정도의 차이밖에 없듯이, 가슴이 짓눌려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슬픈가 혹은 그래도 조금은 견딜 만 한가 정도의 차이밖에 없었다. 한 달 사이 나는 그럭저럭 입던 바지가 단추며 지퍼를 풀지 않아도 발목까지 내려갈 만큼 살이 빠졌다. 오히려 그렇게 내내 슬펐기 때문에 나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견디다 못해 간 신경정신과에서 애도 반응은 통상 한 달이고 그쯤부터 조금씩 괜찮아지기 시작할 거라는 말을 들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를 짓누르는 이 무거운 감정이 고작 한 달만에 다 없어진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 달 남짓이 지난 지금, 내 감정에는 약간의 '진폭'이 생겼다. 전화를 주신 지인의 말마따나 내 목소리가 조금은 원상태로 돌아온 걸 나 스스로도 느낀다. 그가 떠나간 후 생긴 몇몇 좋은 일에는 이젠 진심으로 웃을 수도 있게 되었다. 단골 가게의 사장님과는 시답지 않은 농담도 할 수 있다. 기다리던 몇몇 영화의 개봉 예정일을 보고는 조금 기대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꼭 그런 만큼이나 나는 언제 어떻게든 울 수 있다. 매일 아침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울고, 매주 월요일 오전 상담을 할 때마다 울고, 이제 더 이상 그가 내 옆에 없다는 사실이 실감 날 때마다 운다. 학회 때문에 출국했다 돌아온 날 급작스레 걸려 온 오늘 저녁 같이 먹자는 친구의 전화를 뜻 없이 다음날로 미뤘다가 다시는 친구를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어느 법의학자의 이야기에 울고 남편이 마지막으로 병원에 가던 날 들고 갔던 서류 가방을 10년 동안 열어보지 못했다는 어느 아내의 사연에 울고 군대에서 죽은 아들에게 10년째 편지를 보내고 계신다는 어느 아버지의 이제 조만간 너를 만나러 갈 날이 다가오는 것 같다는 편지글에 운다. 불과 10분 전까지 멀쩡하다가도 저런 순간들에 맞닥뜨리면 거짓말처럼 눈가가 따끔따끔해진다. 내가 정말로 괜찮아진 건지, 혹은 괜찮아지고 있는 중인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형태만 조금 바꾼 슬픔에 아직도 잠겨 있는 건지 나도 나 자신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제 좀 괜찮아졌느냐는 지인의 말에 진심으로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꽤나 오랫동안 그럴 것 같다.
그래서 다짐해 본다. 하루에 한 번만 울자고. 그러나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사실은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