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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Feb 11. 2023

이맘때의 초콜릿

-304

지금은 무엇 때문이었는지 잘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일로 그와 정말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싸우는 내내 우리는 아무것도 안 했고, 서로에게 화를 내다가 냉담해지다가 다시 서로에게 화를 내다가를 반복했다. 밥 같은 걸 차려먹을 정신도 기분도 나지 않아 하루 종일 굶었다. 그리고 그 싸움의 끝은 말없이 방으로 들어온 그가 책상 위에 초콜릿 한 줌을 놓아두고 나가면서 끝났다. 배 안 고프냐? 그는 다짜고짜 그렇게 물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시트콤 같은 이야기다.


1월 말에서 2월 초가 되면 우리는 초콜릿을 샀다. 여기서 초콜릿을 산 주체가 내가 아니라 우리였다는 건, 그게 실제로 그랬기 때문이다. 같이 한 날이 길어지면서 꽃과 리본이 주렁주렁 달린 호사스러운 발렌타인 초콜릿을 사는 짓은 슬슬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초콜릿을 사다 먹는 버릇만은 남았다. 그래서 마트에서 장을 볼 때나 편의점에 갈 때 맛있어 보이는 초콜릿이 있으면 사 와서 나누어 먹곤 했다. 해마 모양의 벨지안 씨쉘 초콜릿 같은 걸 좀 싸게 팔아주면 제일 감사했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그냥 우리에게 발렌타인데이는 무슨 거창한 기념일이 아니라 그 핑계로 좀 비싼 초콜릿을 사 먹는 날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버릇인지, 요 며칠새 나는 짐 앞 마트에서 소포장된 허쉬 너겟 초콜릿을 한 봉지 사다 놓고 수시로 우물우물 까먹고 있다.


초콜릿을 먹으면서 느낀 것 하나는 오후쯤 되면 찾아오는 공복감은 대부분 실제 열량이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혼자라는 외로움에 기인한 가짜 공복감인 것 같다는 사실이다. 다이어트하시는 분들의 글을 읽어보면 가장 피해야 할 음식으로 초콜릿이나 사탕 같은, 열량은 높으면서 포만감을 주지는 못하는 음식을 꼽는다. 그런데 내 경우는 출출해서 뭐라도 집어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초콜릿 하나 정도를 집어먹으면 감쪽같이 그런 욕구가 가신다. 그러니 내가 느끼는 공복감이라는 건 고작 너겟 초콜릿 하나 정도로 다스릴 수 있는 가짜라는 뜻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역시 단 것은 진리라는 것 정도일까. 사람의 신경이란 참 무디고 단순해서 달달한 초콜릿 한 조각에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


제일 윗 문단에 쓴 저 날의 일을 그는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다. 그날 그 순간에 그가 내게 준 것이 초콜릿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면 하루가 꼬박 걸린 그 싸움이 그렇게까지 빨리 끝이 났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한다. 언제 먹어도 초콜릿은 달콤하니까. 달고 맛있으니까. 아무리 서로 싸우고 토라져 있는 그 순간일지라도 그게 안 먹힐 리는 별로 없으니까. 올해 발렌타인데이는 어떻게 할지, 봉안당 안에는 음식 같은 건 넣어주지 않는다는 모양인데. 물끄러미 그의 사진을 보다가, 마트 갈 일 있으면 지금 먹는 너겟 초콜릿이나 한 봉지 더 사다가 먹기로 한다. 그의 몫까지, 나 혼자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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