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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Feb 13. 2023

모든 주방에는 보조가 필요하다

-306

어설프게 혼자서 밥을 해 먹기 시작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점이 몇 가지 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주방에는 반드시 보조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게 있고 없고에 따라서 요리를 하는 프로세스와 걸리는 시간과, 그에 따라 만드는 음식의 질적인 차이까지도 난다는 사실.


대수롭지 않은 라면 하나를 끓이려고 해도 계란을 풀고 파를 썰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몇 가지의 설거지가 나온다. 그런 그릇들이 나올 때마다 그걸 착착 씻어서 제저리에 갖다 놔주는 사람이 있다면 음식을 하는 사람은 그만큼 편해진다. 설거지까지 갈 것도 없다. 팬에 뭔가를 볶고 있다가 미처 넣지 못한 재료가 생각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럴 때 냉장고에 든 재료를 갖다 주는, 혹은 내가 냉장고에 가서 재료를 찾는 동안 팬을 뒤적여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일은 쉬워진다.


물론 현재 우리 집에 살고 있는 건 나 하나뿐이고, 당연히 나를 위해 그런 일을 해 주는 사람은 없다.


별 것도 아닌 볶음밥 한 종류를 해 먹을 때마다 칼에, 도마에, 가위에, 썰어놓은 재료를 담느라 사용한 작은 그릇에, 밥을 볶아 기름투성이가 된 팬에, 식은 밥이 말라붙어 물에 불려놓아야만 설거지가 가능할 것 같은 밥솥까지, 줄잡아 십여 가지에 가까운 설거지 거리가 나온다. 후다닥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러 나가 보면 한숨이 나온다. 무슨 진수성찬을 차려먹은 것도 아니고 알량한 볶음밥 한 그릇 해 먹은 것치고 내가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나 가혹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그 알량한 볶음밥을 하는 동안 옆에서 그런 자잘한 설거지들을 해줄 사람 같은 건 없기 때문에.


그리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 분명 옆에 누군가가 있는데도 이 모든 걸 혼자 해야 했던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를.


나는 그의 요리를 잘 도와주지 않는 편이었다. 늘 뭔가(대개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를 하느라 바빴고, 그래서 그는 여긴 내가 알아서 하니까 너는 너 할 일이나 하라며 나를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래서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구태여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나를 위해 밥을 차리는 그 수많은 날들 동안 그는 늘 혼자서 이런 시간을 보내왔을 것이다. 이걸 썰어야 하는데. 이걸 볶아야 하는데. 이걸 좀 치워서 넣어버려야 하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시간들. 그리고 그는 한 번의 불평도 없이 묵묵하게, 그 귀찮은 일들을 혼자서 다 해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내 곁에서 사라졌다. 이젠 네가 알아서 해보라고, 그렇게 말하기라도 하듯이.


지금 나를 괴롭히는 외로움들은 결국 그를 그렇게 혼자 내버려 둔 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당해 봐야 그게 어떤 건지를 아는 얄팍한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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