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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Feb 14. 2023

눈 녹은 길을 따라서

-307

그가 쉬고 있는 봉안당은 비탈길에 있다. 버스를 내려서 10분 정도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기에는 적당한 경사도이고, 거리다. 단 겨울에 눈이 쌓이면 좀 이야기가 달라지겠다고는 여름 무렵부터 이미 생각은 하고 있었다.


올 겨울 들어 두세 번쯤 그 길을 올라가면서 좀 고생을 했다. 봉안당에 가까워 오면 나름 사람 하나가 걸어 다닐 정도의 너비로는 깨끗이 제설이 되어 있지만 거기까지 큰길을 따라 5분쯤 올라가야 하는 거리가 고역이었다. 인적이 드문 그 길에 쌓인 눈은 저들끼리 엉겨 붙어 고스란히 얼어붙어 있었다. 그래서 그 길을 걸어가면서 나는 몇 번을 미끄러질 뻔하고, 중간중간 보이는 배수구의 쇠창살마다 코인을 발견한 슈퍼 마리오처럼 올라서서 신발 밑창에 들러붙은 눈을 용을 쓰며 긁어내야 했다. 그러느라고 평소의 두 배 정도 되는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요 앞전, 달이 바뀐 인사를 하러 찾아갔을 때는 그 엄청나던 눈들은 거의 다 녹고 없었다.


처음 그를 그곳에 모셔놓고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주변에 꽃들이 가득했다. 언젠가 일신에 걸린 복잡한 일들을 다 정리하면 그때는 어디 꽃 피고 새 우는 조용한 시골에 손바닥만 한 전원주택이나 하나 지어서 너는 글 쓰고 나는 내 할 일 하면서 살자더니, 먼저 이런 데로 혼자 도망이나 오느냐며 몇 번이나 울면서 그 길을 내려왔다. 여름엔 마스크 속으로 배어오르는 땀을 닦으며 내리쬐는 햇살에 있는 대로 이맛살을 찡그리며 그 길을 올라갔다. 가을이 되니 그 좋던 꽃도 나무도 죄다 우수수 발치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그러다가 눈이 내려 몇 번이나 사람을 미끄러지게 하더니, 이젠 그 눈조차 다 녹아 앙상한 길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다음 달쯤 되면 그 길에도 다시 봄꽃이 피겠지. 그날처럼.


그렇게, 시간은 가고 있는 모양이다.


오늘은 발렌타인데이다. 음식물을 넣어줄 수 없는 봉안당의 규칙상 그에게 초콜릿을 넣어줄 방법 같은 것은 없다. 그래서 가서 얼굴이나 보고, 여기까지 온 성의를 봐서 초콜릿 같은 건 그걸로 퉁쳐달라고 우길 생각이다. 뭐 어떡해. 규정상 안된다잖아. 그러게 누가 그렇게까지 멀리 도망가랬냐고. 그런 강짜나 실컷 부리고 오려고 한다.


날은 가고, 시간은 흐르고, 나는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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