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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Feb 15. 2023

이토록 '안물안궁'한 이야기들

-308

그를 떠나보낸 지가 오늘로 312일째가 되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손을 꼽아가며 세지 않아도 두 달만 지나면 그의 1주기이니 뭐 대충 그 정도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브런치 글에 붙이는 넘버링만 봐도 시간이 그 정도쯤 흘렀겠구나 하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새삼 놀란다. 무슨 그런 구구절절한 할 말이 남아서 글을 307개나 썼대. 회사에라도 다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도 아니고. 날이면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청승 떠는 게 고작인 하루하루를 살고 있으면서.


이 브런치를 처음 열 때만 해도 내게는 이 글을 읽어주실지도 모르는 분들까지 배려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당장 내가 죽을 것 같았고 내 마음을 가득 채운 이 상실감과 괴로움을 어딘가에는 토로해야만 했다. 그래서 시작한 브런치였다. 산봉우리에 올라가 야호 하고 소리를 지르듯이, 사람 없는 바닷가에서 알 수 없는 괴성을 지르듯이, 꼭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것 이상의 것은 바라지도 않았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브런치는 그냥 내가 살아있다는,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다는 하나의 소소한 증명에 불과하다.


위에도 썼지만 나는 어딘가에 출근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딱히 사람을 만나는 직업을 갖고 있지도 않다. 원래도 어느 정도 그러했던 내 일상은 그가 떠나버린 후 세상에서 한 발쯤 유리된 채 혼자 겉돌고 있다.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주제에 아직도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으면 뭐라도 쓰게 된다는 것은 참 놀라운 일이다. 물론 워낙 뻔하디 뻔한 일상을 살고 있는 터라 거기서 거기인 몇 가지 주제의 끝없는 변주에 불과한 것 같기도 하지만서도.


나는 과연 언제까지 이 브런치를 쓸 수 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떠나간 사람이 전혀 그립지 않은 날 같은 게 당장 올 것 같지는 않으니 그런 건 차치하고라도, 언젠가 오늘은 도저히 쓸 말이 없어서 쉬어가야겠다는 그런 기분이 드는 날이 올까. 그리고 그런 날이 반복되어 영영 글을 쓰지 않게 되는 날이 올까. 그럴지도 모른다. 글 쓰는 일을 좋아하는 주제에 나는 어려서부터 일기 쓰는 방학숙제를 제일 싫어했다. 그래서 그날그날 있었던 일을 적어 남기는 짓을 300일 넘게 해 본 건 40년이 넘는 인생을 통틀어 지금이 처음이다. 그런 나이니, 언젠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쓸 말이 생각나지 않아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다만, 그렇다. 나에게 이 브런치에 글을 쓰는 시간은 그와의 대화 같은 것과도 비슷하다. 어제는 이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했고, 그런데 그거 오빠가 있었으면 이렇게 저렇게 했을 것 같은데 나는 아무래도 그렇게는 못하겠더라는, 결국 줄여놓고 보면 그런 내용에 불과한 이야기들. 그러니까 어쩌면 나는 아주 먼 훗날 그를 만나러 갈 때 그에게 제출할 길고 긴 방학숙제를 지금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건지,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이 안물안궁한 이야기들에 매일 아침마다 마음을 남겨주시는 눈에 익은 소중한 분들에게 새삼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이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홀로서기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시는 것에 대해서도. 이 브런치를 시작하며 내가 얻은 것은 약간의 마음의 평화와, 그래도 누군가가 나를 지켜봐 주고 있구나 하는 작은 용기 같은 것이므로. 그건 아마도 이 세상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것이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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