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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Feb 17. 2023

겁이 많아졌다

-310

요즘의 나는 겁이 많아졌다. 나 스스로가 뚜렷하게 느낄 정도다.


냉동된 만두를 굽다가, 기름에 올려놓고 아랫부분이 살짝만 익도록 굽다가 물을 조금 붓고 뚜껑을 덮어 찌듯이 구우면 겉바속촉한 군만두가 된대서 그렇게 하다가 얼어있던 만두의 속에서 녹아 나온 물 때문에 프라이팬 속에서 펑 하고 터지는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기겁을 해서 불을 끈다. 나의 군만두는 거기서 끝이다. 겉바하지 않아도 되고 속촉해지는 것도 필요 없다. 그 폭발음에 가까운 소리를 또다시 듣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천정의 형광등이 나가서 갈아야 할 일은 시시때때로 생긴다. 예전엔 의자만 갖다 놓고 그 위에서 까치발을 들고도 잘만 갈았다. 그러나 이제는 못 그런다. 억지로 까치발을 들고 오래 서 있는 순간 뭔가 핑 도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나는 두말없이 의자에서 내려와 다소 일이 귀찮아지지만 프린터 받침대로 사용하는 서랍장을 가져온다. 괜히 잠깐 귀찮은 걸 면하자고 무리하다가 전등 유리 커버를 떨어뜨리거나 의자에서 떨어진다거나 그 모든 일이 다 생긴다거나 하면 아무도 나를 보살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 문 바깥에서 뭔가 인기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 뭔가 움직이는 소리, 뭐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예전엔 그러거나 말거나, 벨을 누른다거나 문을 두드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직접 내게 어필하지 않으면 신경 쓰지 않았다. 광고 전단지 붙이러 다니는 사람이겠지. 뭐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문 밖에서 뭔가 움직이는 기척이 나면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 기척이 사라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전단지 붙이러 다니는 사람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데도.


요즘 나는 자주 놀란다. 그리고 그만큼 안도한다. 그리고 조금 전 내가 피해 간 최악의 상황에 대해 생각한다. 그때 터진 것이 만두가 아닌 다른 뭔가였다면. 억지로 낮은 의자 위에 올라서서 형광등을 갈다가 유리커버를 떨어뜨리고 그 위에 떨어졌다면. 그러다가 어디 잘못 부딪히기라도 했다면. 문 밖에 서성거리던 것이 전단지 붙이러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나쁜 목적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뭐 그런 생각들을. 그리고 새삼 겁에 질리고, 새삼 안도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조심해야지. 더 귀찮더라도, 더 번거롭더라도, 조금은 미련해 보일지라도 조심해야지.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를 도와줄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으니까.


이제 내게는 믿을 구석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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