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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Feb 19. 2023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312

밥을 차려먹는 건 내 하루 일과 중 가장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밥을 차린다는 건 단순히 음식을 하는 과정만이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냉장고 속에 들어있는 식재료를 얼마나 쓰느냐 하는 문제부터 설거지를 하고 뒷정리를 하는 과정까지를 전부 포함하기 때문에 말이다. 먹는다는 행위가 의심할 여지없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중요한 즐거움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은 하지만 저런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 번거롭고 귀찮은 나머지 사람이 우주에 가서 사느니 마느니 하는 이런 세상에 왜 한 알만 먹으면 알아서 한 끼가 해결되는 그런 편리한 알약 같은 것도 하나 못 만드느냐는 말을 몇 번이고 투덜거린 적이 있었다.


짜놓은 식단이 다 떨어졌고 마침 냉장고도 슬금슬금 텅텅 비어 가서 또 식단을 짜고 마트 주문을 해야 하는 날이구나 하고 실감했다. 물티슈니 생수니 하는 늘 사는 물건 몇 가지를 기계적으로 카트에 담아놓고 나는 건성건성 식단을 짜기 시작했다. 식단을 짠다기에도 뭣한, 그냥 이것 먹은 지 좀 오래됐다 싶은 음식들을 끌어다가 언제쯤 먹는다고 캘린더에 적어두는 작업에 불과하지만. 어제는 카레가 그런 식으로 끌려 나왔다. 그러나 카레를 만들기 위해 굳이 따로 사야 할 품목은 없었다. 어지간한 건 집에 대충 있어서. 주문 금액이 조금 모자랐다. 그래서 나는 과거에 내가 샀던 품목들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뭔가를 또 빼먹은 것이나 아닌지를 한 번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매우 낯선 품목 하나를 발견했다. '광장시장 빈대떡'. 뭐야. 내가 언제 이런 걸 샀는데.


한참을 들여다보니 겨우 생각이 났다. 설 무렵이었으니까 거의 한 달도 전이다. 설이면 늘 해 먹던 튀김이니 전이니가 조금 그리워져서 편리하게 냉동식품으로 나온 것을 충동구매 비슷하게 사서는 편리하게 냉동실에 처박아놓은 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마지막 확인사살 겸, 나는 밖으로 나가 냉동실 문을 열어보았다. 있었다. 하기야, 없을 리가 있나. 내가 사놓고 내가 안 먹었으니 거기 그렇게 처박혀 있는 게 당연하지.


그가 있었을 때라면 어림없는 일이다. 상대적으로 유통 기한이 넉넉한 냉동식품이니, 아직까지 냉동실에 들어있었을 수는 물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나처럼 거기 그렇게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 진짜 그래가지고 어떡할래. 그런 목소리가 순간 들린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몹시 머쓱해졌다.


뭐 덕분에 오늘의 점심 메뉴는 광장시장 빈대떡으로 낙찰이다. 마침 날씨도 꿀꿀하니 흐리고 부침개 같은 걸 먹기에는 아주 최적의 날씨다. 좀 징징거리고 싶다. 돈 주고 사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그 사실 자체도 까먹어버리는데, 나 도대체 이 풍진 세상 어떻게 살면 좋으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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