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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떠나기 약 두 달 전쯤 내게는 다소 골치 아픈 문제가 생겼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을 그에게 털어놓고 상의하지 않았다. 그 무렵 그는 부쩍 컨디션이 좋지 않아 옆에서 보기에도 종종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내 걱정거리 하나를 더 얹어주고 싶지 않았다.
일이 점점 악화되어가던 중 그가 급작스레 떠났고, 나는 넋이 반쯤 나간 상태로 그 일의 수습을 놓아 버렸다. 반쯤은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의 기분이기도 했고, 두 번째로는 도저히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이기도 했다. 그 일이 어떻게 결론 나든 그가 떠나간 지금보다 최악일 수는 없을 터였고, 그 사실을 면죄부 삼아 나는 나 자신 속으로 침잠한 채 그 일을 회피해 버렸다.
그리고 지난 5월 6일, 그 일은 이건 말도 안 된다 싶은 최선의 형태로 알아서 해결된 채 내 앞에 나타났다.
100 퍼센트는 아니라도 70 퍼센트 정도는 제정신이 돌아온 지금의 상태로 봐도 이건 이럴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일의 선후를 따지기 전에 내가 그 일을 수습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인생이란 단순하지 않아서 내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알아서 수습되는 편리한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 일이 알아서 잘 해결되었다는 내용의 메일 앞에서 돌처럼 굳어진 채 멍청하게 한참이나 모니터만 쏘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누가 옆에서 따귀라도 올려붙인 듯 눈물이 쏟아졌다.
그건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지 않고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나를 위해 애써준 누군가가 있지 않고는 그렇게 결론 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날 지켜줘서 고마워. 그 말만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그의 사진 액자를 껴안고 눈이 짓무르도록 울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그의 봉안당에 들러 감사 인사를 하고 그와 수태 그 앞을 지나다니던 인근의 절 한 군데에 가서 연등 하나를 더 달았다. 그의 연등은 이미 해동 용궁사에 하나 달았지만, 등을 두 개 단다고 해서 부처님이 너 왜 연등 두 개 올리냐고 꾸짖지는 않으시겠지. 뭐 그런 마음이었다. 알고 보면 꽤 유서가 깊은 절이라던데 언제 한 번은 가봐야지, 하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는데 결국은 그가 떠나고 난 후에야 나는 그 절에 들어가 연등 하나를 올리고 올 수 있었다.
그 절 앞을 지나가는 길은 일종의 샛길이었다. 그래서 군데군데 요즘은 찾기도 어려운 비포장된 구간이 있었고,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마치 롤러코스터라도 탄 듯 몸이 흔들리곤 했다. 그는 알고 있을까. 그 흔들림을 내가 실은 무척 재미있어했다는 것을. 그 길 양쪽으로 드리워진 울창한 수풀을, 무슨 공사를 한다며 세운 가벽으로 다 막아버렸을 때 내가 무척이나 서운했었다는 것을. 아마 그는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들 뿐만 아니라, 미처 말하지 못한 나를 괴롭히던 그 일도. 그래서 내 곁을 떠난 후에도 못내 눈에 밟혀서, 이런 식으로 나를 도와준 것이겠지.
그 절은 어느 성군이 왕위에 오르지도 못한 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부친을 위로하기 위해서 지은 절이라고 한다. 그 한없는 추모와 애도의 한 자락이나마 그에게도 허락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