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춘천 어느 빵집의 버터크림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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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5월 26일은 그의 49제 날이다. 생전 처음으로 준비해야 하는 49제라 막막하기만 하다. 음식은 어떤 걸 챙겨야 하는지, 어떤 절차에 따라야 하는지, 차도 없는데 봉안당까지 그 음식들을 다 어떻게 가져가야 할 건지 하나부터 열까지 엄두가 나지 않는 것들 투성이다.


그러던 중에 특히나 49제 때는 고인이 특별히 좋아하던 음식이 있다면 그걸 올리는 것도 좋다는 글을 봤다. 그래서 49제 때는 케이크라든지 카스텔라 같은 걸 올리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고 했다. 그 글을 보는 순간 반사적으로 그가 유독 좋아하던 춘천 어느 빵집의 버터크림빵이 생각났다. 그 빵은 그와 나 둘 다 너무 좋아하는 빵이어서 너무 자주 사다 먹으면 물릴까 봐 일부러 자주 사다 먹지 않고 아껴두는 그런 빵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빵만큼은 꼭 상에 올려주고 싶었다.


그 집에서 버터크림빵을 주문하는 방법은 세 가지 정도가 있었다. 첫 번째는 당연히 직접 가서 사 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빵 하나를 사자고 여기서 춘천까지 갈 엄두는 도저히 나지 않으니 탈락. 두 번째는 빵집으로 전화해서 택배로 주문하는 방법이다. 실제로 코로나가 터지고 그가 운전을 그만둔 후 우리는 이 방법으로 두어 번 그 집의 빵을 택배로 받아 며칠간 먹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방법을 쓰자면 최소 주문 금액에 맞춰 빵을 이것저것 골라야 한다. 날이 슬슬 더워지고 있으니 택배 배송을 하지 않는 빵들도 있을 테고 나 혼자 먹을 빵을 3만 원어치나 골라 그걸 다 먹어치울 것을 생각하니 그것도 내키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마지막 남은 방법은 로컬푸드 마켓에 주문하는 것이다. 이 빵집의 버터크림빵은 꽤 전국구여서 다른 빵 없이 오직 버터크림빵만 파는 마켓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여기 주문하면 이런저런 복잡한 것을 따지지 않아도 버터크림빵을 살 수는 있을 터였다. 그러나 여기도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 집의 최소 주문 수량은 무려 열네 개였다.


그가 있었다면 그깟 버터크림빵 열네 개쯤 일곱 번만 먹으면 된다. 우리는 춘천에 들러 그 집에서 빵을 사 올 때 언제나 버터크림빵은 다섯 개를 사서 네 개는 집에 가서 각각 하나씩 두 번을 먹었고 한 개는 반으로 쪼개 차 안에서 먹곤 했다. 그러니 일곱 번쯤이야 못 먹을 것도 없었다. 빵은 말랑할 때 냉동실에 얼렸다가 하나씩 해동해서 먹으면 의외로 오래가는 음식이다. 특히나 그 빵집의 버터크림빵이 대단한 이유는 이런 식으로 얼렸다가 해동해도 별로 식감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거였으므로. 그러나 그가 있을 땐 일곱 번이면 다 먹을 수 있는 버터크림빵 열네 개는 나 혼자서는 열네 번을 먹어야 겨우 다 먹을 수 있는 양으로 불어나 있었다.


결국 나는 고민 끝에 다음 주까지 최대한 냉동실을 비우고 그냥 버터크림빵 열네 개를 주문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나는 제사상에 올린다 치고, 남은 열세 개는 뭐 올해 안에는 다 먹겠지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남은 빵들을 처리할 게 머리 아파서 그가 그렇게나 좋아하던 빵 하나 흔쾌하게 주문하지 못하는 내가 퍽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게 왜 그렇게 불쑥 갔느냐고, 당신이 가고 나면 남은 내가 이러고 살 줄 몰랐느냐고, 그런 귀먹은 원망을 하며 책상 위에 놓인 그의 사진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가 내 곁에 없다는 건 이런 의미이기도 했다.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던 것들이 하나하나 문제가 되는 그런 것. 아무리 맛있는 것도 양이 너무 많으면 사기에 꺼려지는 것. 그 빵을 먹는 것이 기대되기보다 남은 빵들을 어떻게 다 먹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는 것. 이 빵뿐만 아니라, 모든 것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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