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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그 신호가 제일 먼저 손으로 온다나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말이 과히 틀린 말이 아닌지, 나이를 먹고부터는 핸드크림이 필수품이 되었다. 예전엔 한겨울에 찬물에 손 담그고 온갖 짓을 다 하고도 따뜻한 곳에서 10분 정도만 있으면 멀쩡해졌었는데 요즘은 손에 물이 닿고 난 후엔 뭐라도 발라줘야 버석거리는 기가 덜하다. 나도 도리없이 나이를 먹는구나 하는 실감을 매번 이럴 때마다 한다.
집 근처의, 어지간한 생활용품을 천 원에서 오천 원 정도의 가격에 파는 생활용품샵에 그와 가끔 바람도 쐴 겸 구경을 하러 가는 일이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그때마다 말없이 천 원짜리 핸드크림을 종류별로 몇 개씩 사 와서 반반씩 나눴다. 그리고 그의 핸드크림이 통상 더 빨리 떨어졌다. 손에 물 묻히는 일을 그가 더 많이 해서이기도 했고, 아무래도 그가 나보다 손이 컸으니 한 번에 바르는 양이 더 많기도 했다. 그래서 같이 사온 핸드크림이 떨어지면 나는 내 몫으로 가져갔던 핸드크림 중에 뜯지도 않은 것들을 그에게 쓰라고 갖다 주곤 했었다.
작년 봄에도, 그렇게 같이 산 핸드크림이 하나 있었다. 가격은 천 원밖에 안 하는데 용량이 100밀리나 들어 있어서 양 많은 거 잘 샀다며 내내 뿌듯해하던 기억이 난다. 내 것은 라즈베리 향, 그의 것은 코튼 향이었다. 그리고 그 핸드크림은 아직도 그의 책상 위에, 그가 늘 두던 그 자리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아침마다 내가 책상을 닦느라 그 위치가 아주 똑같지는 않겠지만.
내 핸드크림은 이제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크림을 짜내기 위해 힘을 줘야 하는 위치 및 강도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고, 스탠드 불빛에 비춰보면 크림이 얼마 남지 않아 입구 쪽으로 몰려있는 것이 보인다. 이 크림을 다 쓰고 나면 어떻게, 나 혼자 쓸 핸드크림을 사야 하나. 그러느니 사놓고 얼마 쓰지도 못한 그가 쓰던 핸드크림을 쓰는 게 맞을 것 같은데. 그러나 차마 내키지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도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 참이다.
그냥 우리의 시간도 그렇겠거니 한다. 내가 나이를 먹고 늙어가도 그는 작년 봄 그 모습 그대로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겠지.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에 늙었다느니 할머니 다됐다느니 하는 소리를 하면 그때야말로 등짝을 때려줄 참이다. 말이면 다인 줄 아냐고.
한 개 천 원 남짓 하는 핸드크림 하나에 이런 싱숭생숭한 생각이 다 드는 걸 보니 봄이 오긴 온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