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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어는 놓아야겠고 딱히 볼 컨텐츠는 마땅치 않아 거의 하루 종일 손흥민 선수의 골 모음과 프로야구 시범 경기가 돌아가고 있는 우리 집 텔레비전에 한 가지 킬러 컨텐츠가 생겼다. 저녁 7시쯤 방송하는 옛날 개그콘서트다. 처음엔 보고 보고 또 봐서 이젠 중계멘트까지 외워버린 하이라이트 재방송보단 낫겠지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요즘은 꽤 기다리는 방송이 되었다. 이러다가 어쩌면 채널 월정액을 끊어서 정주행을 시도해 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요즘 방송하고 있는 분량이 정확히 언제 방송분인지 그것까지 알 방법은 없다. 다만 자칭 '개대의 여신'이라는 한 대학교 신입생이 '개콘대학 14학번'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걸로 봐서 2014년도 방송분쯤이 아닐까 하고 짐작만 할 뿐이다. 2014년이라. 그리 오래된 것 같지도 않은데 그게 벌써 10년 전이다. 그러고 보면 내 시간은 2000년을 지나오면서 그 어딘가에 고스란히 멈추어버린 것 같다.
2014년쯤에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었던지,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이 집에 아시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이 집에 이사오기 전 살던 집에서 꽤 이런저런 힘든 일이 많았었다. 이사를 하고, 하늘이 많이 보이는 집으로 이사 와서 참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딱히 좋은 일은 생기지 않지만 크게 나쁜 일도 생기지 않는,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또 내일 같은 그런 지극히 평범한 하루하루. 지금 생각하니 그게 얼마나 복 받은 나날이었는지 모르고 뭐 재밌는 일 좀 안 생기나 하고 생각하던 그런 날들. 요즘 내가 보고 있는 개그콘서트가 실시간으로 방송되던 무렵의 나는 그렇게 살고 있었다.
코미디는 참 유통기한이 짧은 상품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기한이 10년쯤 지나버리니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다 아는 개그들이고 그 패턴이 뻔한데도, 요즘 나는 그 10년 전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웃는다. 몇몇 유행어를 따라 하고 가끔은 정말로 생각지도 못하는 지점에서 허를 찔려 혼자 빵 터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끝은 대개 저거 한참 방송할 때는 내 옆에 그 사람도 있었는데 하는 생각에 혼자 씁쓸해지기를 반복한다.
사람은 언제나 '그때가 좋았는데' 하는 생각만 반복하면서 평생을 산다는 그런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이제 40대 중반에 접어들었지만 그런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런 것 같다. 이왕 거라면, 언젠가 지금의 이 날들을 떠올리며 그래도 그땐 이러저러해서 좋았는데 하고 생각하게 될 날도 조만간 온다는 말이겠지.
좀 더 오늘이 즐거운 줄 알고 살아야겠다. 개콘대학 14학번, 개대의 여신 이수지 양처럼. 그나저나 14학번이면 지금쯤 개대의 여신도 서른 살 쯤이 되었겠다. 서른 살이 된 그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런 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