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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식단이 애매하게 비면 계란말이 김밥을 사다 먹곤 한다. 김밥을 찍어먹으라고 같이 주는 마요네즈 소스가 또 맛있어서 한 개 정도 더 추가로 더 사서 며칠 안에 참치마요덮밥을 만들어먹을 때 쓰곤 한다. 이런 걸 보면 나는 정말 마요네즈를 좋아하긴 하는 모양이다.
물론 이 집은 어디까지나 '조커'다. 이래도 저래도 밥 때울 거리가 생각나지 않을 때나 쓰는 일종의 비상수단 같은 것이다. 어제는 사실 그런 날도 아니었다. 며칠 전에 끓인 된장찌개가 태산같이 남아있고, 그래서 쌀을 씻어 밥만 하면 그냥 한 끼는 아무 생각 없이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그러나 그냥 그러기가 싫었다. 그래서 나는 며칠 전에 새로 산 신상라면 맛이나 한 번 보자는 핑계로, 예의 계란말이 김밥을 한 줄 사다가 라면이랑 같이 먹고 한 끼를 때우기로 했다.
경험상 배달 앱으로 포장주문을 마치고 바로 옷을 갈아입고 나가면 김밥 준비가 다 되는 것에 거의 딱 맞춰서 김밥집에 도착할 수가 있기 때문에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집 밖으로 나섰다가 나는 잠깐 그 자리에 발을 멈추었다. 길 건너 아파트 단지를 따라 죽 심어진 벚나무 중 성질 급한 한두 그루가 벌써 꽃을 피운 모양이었다. 벚꽃도 벚꽃이거니와 개나리 정도는 이제 제법 많이들 피어있었다. 한 며칠 날씨가 갑작스레 푹해졌다고 생각했더니 그 사이 꽃들이 야금야금 피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래서 잠깐 그 자리를 서성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밥을 찾으러 가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로.
그날, 조사를 받으려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쓰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한가득 피어있던 봄꽃들이 생각난다.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는 건지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몇 걸음에 한 번씩 발을 멈추고 심호흡을 해야 했던 것도. 순식간에 덜렁 혼자 남아버린 세월을 그래도 내가 1년이나 버텨냈구나 하는 감회 아닌 감회가 엇갈려 잠시 멀미 비슷한 어지럼증이 났다. 이 글을 쓰면서도 또 부정맥이라도 온 듯이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런 봄날을 몇 번쯤 더 겪어내면 조금은 초연한 얼굴로 창밖의 봄꽃을 바라볼 수 있게 될까.
그 날씨 좋던 봄날 떠나간 사람은 지금쯤 거기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아픈 데는 없는지. 밥은 잘 먹는지. 잠은 잘 자는지. 이곳에서 당신을 괴롭히던 모든 것들(심지어 나도 포함해서)이 없는 그곳에서, 당신은 여기서보다 행복한지. 제발, 꿈에라도 한 마디만 대답해 주면 좋겠다. 나는 잘 있으니 너도 잘 지내라고. 이 봄날에.